클라라 주미 강 “나만의 음악 세계 자리 잡아… 선한 영향력 매일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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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인터뷰지난 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거암아트홀.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등장한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37·사진)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바이올린을 어깨 위로 올렸다.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와 함께 들려준 곡은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2악장. 활을 현에 밀착시키면서 단숨에 열정적 악상을 불러낸 그는 음 하나하나에 풍부한 색채를 덧입히면서 작품 본연의 넘치는 에너지와 애수 어린 서정을 마음껏 쏟아냈다.
9월 6차례 전국 순회 공연 열어
타르티니 ‘악마의 트릴’ 등 연주
"바쁜 일정 힘들지 않아…모든 연주 과정 즐거워"
탁월한 기교와 우아한 음색, 섬세한 표현으로 정평이 난 한국계 독일인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국내 청중과 만난다. 타르티니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소나타 1번, 쇼송 ‘시(詩)’,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등으로 레퍼토리를 채운 리사이틀 무대에서다. 클라라 주미 강은 9월 1일 경기 부천아트센터를 시작으로 5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6일 함안문화예술회관, 7일 성남아트리움, 8일 통영국제음악당,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등에서 전국 순회 공연을 갖는다.“안녕하세요. 바이올리니스트 강주미입니다.”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한 클라라 주미 강은 “한국에서의 연주는 언제나 특별하다. 나의 고국인 만큼 (다른 나라에서보다) 청중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며 “각각의 스토리가 담겨있는 4개의 바이올린 작품을 듣고 많은 분이 위로와 용기를 얻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연의 1부는 ‘트릴’(두 음을 교대로 빠르게 연주하며 소리 내는 장식음), 2부는 ‘프랑스’가 키워드다. “4~5살 무렵 처음 도전한 타르티니 ‘악마의 트릴’은 제 음악 인생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작품이고, 8살 즈음에 접한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듣자마자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한 작품입니다. 꿈속에서 들은 소리를 악보로 그려낸 타르티니의 트릴과 2차 세계대전 당시 느낀 현실의 공포를 그대로 담아낸 프로코피예프의 트릴을 연결해서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1부와 달리 쇼송, 프랑크 등 프랑스 작곡가들의 곡이 담긴 2부에선 서정적인 분위기를 제대로 느껴보실 수 있을 겁니다.”클라라 주미 강은 일찍부터 ‘바이올린 신동’으로 주목받은 연주자다. 4살 때 독일 만하임 국립음대 예비학교에 최연소로 입학했고, 이듬해 함부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20대 때는 서울 국제 음악 콩쿠르(2009), 일본 센다이 국제 콩쿠르(2010),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콩쿠르(2010) 등에서 잇따라 우승을 차지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30대 후반을 향하는 그는 “바이올린을 오래 연주해온 덕분인지 이젠 나만의 음악 세계가 자리 잡혔다는 생각이 든다”며 “연습 과정에서도 이전과의 차이를 느낀다”고 했다.“어렸을 때는 연습할 때 입으로 악보의 음표를 직접 따라 부르면서 자연스러운 선율의 흐름, 즉 노래를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습니다. 그때는 머릿속에서 맴도는 수많은 음악적 고민을 그렇게 하나하나 풀어내야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노래를 만드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쓰진 않아요. 오히려 운동선수가 훈련하듯 매일매일 4~5시간씩 기본기, 테크닉 등을 갈고 닦는 데 집중하죠. 경험이 쌓이면서 생겨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2022년 영국 굴지의 클래식 매니지먼트사인 인터무지카와 전속 계약을 맺으면서 세계적 반열에 오른 그의 연주 일정은 올해도 빡빡하다. 최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영국 런던 위그모어홀 등에서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마친 그는 하반기 영국 BBC 프롬스(재초청),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데뷔) 등에서의 연주를 앞두고 있다. 힘들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다행히도 시차 적응 같은 소소한 문제 빼고는 힘든 점이 없다”며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모든 과정이 굉장히 즐겁다”고 답했다.이번 공연에서 클라라 주미 강은 1702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튜니스’(기아 후원)를 들고 무대에 오른다. 그는 “지난해 여름부터 사용 중인 ‘튜니스’는 마치 충분히 다듬어지기 전의 다이아몬드 원석 같은 악기”라고 했다. “지난 8년간 사용해 온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삼성문화재단 후원)보단 확실히 남성적인 색채가 강한 악기지만, 반대라서 더 끌렸던 것인지 소리를 듣자마자 남다른 기운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튜니스’를 붙잡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몰라요(웃음).”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음악가가 되기 위해 매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깨닫게 된 건 세계 곳곳에선 매일같이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 전 그런 일들에 늘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란 겁니다. 오래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같은 나라에서 만났던 청중의 얼굴이 지금까지도 눈앞에 아른거릴 정도로요. 음악의 진정한 힘은 결국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때 생겨나고, 이를 향해 계속 나아가는 것이 음악가로서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음악이 쉽게 닿지 않지만, 그 어떤 나라보다 음악이 절실한 곳에 가서 연주하는 것, 그게 제 꿈입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