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과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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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현호의 바벨의 도서관대관람차와 검은 고양이
검은 고양이 같은 농담, 대관람차 같은 딴짓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는 세상의 모든 검은색 고양이를 그의 작품 속에서처럼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책을 읽고 난 이후 길을 가다가 마주친 검은 고양이는 더 이상 단순한 동물이 아닙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펼쳐질 것처럼 상상하도록 만들어주는 존재’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검은 고양이 같은 구조물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도시 한복판에 놓인 대관람차입니다. ‘심각한 주제로 시작한 이야기의 한 가운데에 툭 던져 놓은 농담’ 같다고 해야 할까요? 도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장소에 대관람차가 설치되어 있는데, 꼭 기분 좋은 일이 펼쳐질 것처럼 기대감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여행 중 우연히 그 구조물과 마주치면 반드시 사진으로 기록하곤 합니다. 명백히 실물로서 존재하는 대관람차는 미장센(Mise-en-Scène, 영화와 연극 등에서 시각적인 요소를 아름답게 배치하는 표현 기법)에 탁월한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이나 독특한 세계관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작품처럼 이질적이면서도 몽환적으로 느껴집니다. ‘영화적인 구조물’인 대관람차는 영화 속에서도 뚜렷한 역할을 해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2022)>에서 두 명의 주인공이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게 되는 장소, 실화를 바탕으로 첫사랑의 아련함을 그린 영화 <노트북(2004)>서는 새롭게 시작되는 연인에게 중요한 사건을 만들어내는 장소로 대관람차가 활용됩니다. <비포 선라이즈(1995)>의 오래된 대관람차도 여전히 우리를 설레게 합니다. 만약 영화 속 추억의 명장면에 대관람차 대신 롤러코스터가 배경으로 주어졌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빠른 속도와 불안한 궤적으로 인해 인물의 애틋함과 간절함을 녹여 내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가벼운 농담처럼 느끼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딴짓 같은 예술, 크로스오버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분야의 장르가 적당한 비율로 뒤섞여 감동적인 문화예술을 만들어내는 경우, 우리는 이를 보통‘크로스오버(Cross-over)’라 칭합니다. 근래에 들어 ‘협업(Collaboration, 콜라보레이션)’이라는 용어도 자주 회자되지만, 크로스오버의 적확함을 대체하기는 힘들죠. 취향에 따라 크로스오버 장르보다는 ‘정통’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저는 문학부터 음악, 미술, 영화에 이르기까지 뒤죽박죽의 이 예술을 유난히 좋아합니다. 살짝 비틀어 새로운 도전을 해내는 ‘딴짓’ 같은 모습에 응원을 보내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린 시절엔 크로스오버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아버지의 책장에 다양한 음반이 꽂혀 있었는데, 한 번도 꺼내지 않아 먼지가 쌓인 것이 있는 반면, 음악의 재생 순서를 외울 정도로 반복적으로 듣는 것도 있었죠. 나중에 보니, 한결같이 크로스오버 음악이었습니다. 그때에 이르러서야 크로스오버가 어떤 것인지 대략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최고로 기억하는 크로스오버 음반은 바로 플루트 연주자 제임스 골웨이(James Galway)와 아일랜드의 민속 악기 밴드 ‘치프테인스(Chieftains)’의 <인 아일랜드(In Ireland)>입니다.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다양한 작곡가의 셀틱 뮤직을 접했지만, 이 음반과 견줄 것은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골웨이와 치프테인스의 <In Ireland - Roches Favourite>]
그리스 가수 나나 무스쿠리(Nana Mouskouri)는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Nabucco)> 가운데 가장 유명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Song for liberty_Va, pensiero, sull'ali dorate_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을 불렀는데, 그 시절의 저는 ‘오페라’도 ‘주세페 베르디’도 몰랐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리스 사람들은 이런 근사한 노래를 부르는구나’,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는 웅장한 것이구나’ 생각했을 따름입니다. 이후 부모님과 떠난 여행의 대부분은 이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채워졌고, 언제라도 이 음악을 들을 때면 나부코의 배경인 예루살렘 대신 설악산과 지리산을 떠올렸습니다. 나나 무스쿠리의 음악이 전형적인 크로스오버 장르였다는 점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나 알게 됐습니다. 여행 때마다 이를 즐겨 들었던 저희 가족과 그리스 가수, 이탈리아 작곡가, 예루살렘과 지리산에 관한 기억이 뒤섞인 것도 말 그대로 크로스오버였습니다.
[나나 무스쿠리가 부른 오페라 <나부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테너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이 부른 <향수>]
재즈를 추구하는 예술가 가운데에는 유독 크로스오버 음악이 많았는데요. 존 루이스(John Lewis), 자크 루시에(Jacques Loussier), 클로드 볼링(Claude Bolling)이 대표적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피아니스트 클로드 볼링이 플루트 연주자 장 피에르 랑팔(Jean-Pierre Rampal)과 협업해 발표한 음반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바 있습니다. ‘바로크 앤 블루(Barque and Blue)’를 비롯해 자꾸만 따라서 흥얼거리고 싶은 연주가 음반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죠.
위대한 소설가들의 딴짓
소설가 김훈 선생의 대표 작품을 선정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발표한 <하얼빈>을 비롯해 <남한산성>, <흑산>,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등 멋진 소설이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연필로 쓰기>, <라면을 끓이며> 같은 수필을 읽을 때면 마치 ‘작가와 직접 대화를 하는 것처럼’ 생생한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문장 한 문장에 더욱더 집중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심 ‘작가가 딴짓을 해준다면 좋겠다’거나 ‘소설만큼 수필도 자주 출간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가능한 한 연필로 편지를 쓰고 공유 자전거를 타거나 종종 작가를 흉내 낸 라면을 끓이는 행동은 어쩌면 ‘딴짓을 향한 동경’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별히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를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준 소설만큼이나 다양한 수필을 쓰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저는 하루키 선생의 수필 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무라카미 T>, <시드니!>, <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터키까지>, <낡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등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무라카미 T>를 통해 보여주는 작가의 딴짓은 닮고 싶은 구석이 있습니다. 세상의 값비싼 티셔츠를 원하는 만큼 구입할 수 있을 것 같은 하루키 선생은 오히려 ‘어디서 무료로 나눠준 것처럼 보이는 옷’에 사연을 덧붙여 소개했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좋았습니다.중국 작가 위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제>, <인생>, <허삼관매혈기>, <제7일> 등 쟁쟁한 소설을 지어낸 이 작가에게도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같은 수필이 있습니다. 감히 평가하자면 저는 위화 선생의 경우에도 소설(도 매우 훌륭하지만) 보다 수필을 더 좋아합니다. 그의 작품에 줄곧 인용되는 문화대혁명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관해서도 수필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 나눌 수 있었습니다. 위화의 딴짓 속 문장을 읽으면,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농담을 건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가 저명한 학자와 소설가의 수필을 동경하는 까닭은 ‘결국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고 ‘사치품을 사는 대신 평범한 음식을 먹고 소박한 삶을 살아내는 인물’이라는 점을 꾸준히 확인하고 싶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저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기를 즐기고 맥주 한 잔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작가들의 딴짓을 그리워한다고 해야 할까요?
차라리 인형 눈알이라도 붙여 볼까요?
영화 <에브리씽·에브리웨어·올앳원스(2022)>에서 중요한 오브제로 다뤄졌던 인형 눈알(구글리 아이즈)을 보며 우리가 살아내는 일상 속에서 ‘딴짓과 농담’이 주는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여기에 더해 이 영화에서 인물들이 차원 이동을 하기 위해서는 결코 상식적이지 않고 맥락에도 맞지 않는 행동을 해야만 하는데요. 이것은 비단 영화 속에서만 묘사했던 허구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항상 효율과 성과만을 지향하며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가만히 보면 ‘딴짓과 농담’이 더욱 중요한 교훈을 주는 날도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대관람차와 검은 고양이를 발견하거나, 우연히 근사한 크로스오버 음악을 듣거나, 딴짓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바라볼까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 방금 전 막 식사를 마친 아이들에게 숙제를 다했냐는 질문 대신 검은 고양이 같은 농담을 건네고, 대관람차와 같은 딴짓을 권하고 싶은 저녁입니다.김현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