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신스틸러가 있다면, 섬·씨앗·밥이로다

[arte] 김현호의 바벨의 도서관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 우리 주변의 강렬한 장면들
비록 주인공은 아니지만, 이야기 속에서 관객과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을 두고 ‘신스틸러(Scene stealer·말 그대로 장면을 훔치는 사람)’라고 칭합니다. 도시에도 신스틸러가 있습니다.

동십자각과 보행섬경복궁의 동쪽 모서리에 위치한 동십자각(東十字閣)은 원래 궁성의 담장과 이어진 망루였습니다. 학계의 염원에 따라 여러 차례 복원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동십자각은 여전히 섬입니다. 우회도로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어른이 된 지금은 망루 시절의 동십자각을 상상해낼 수 있지만, 어린아이일 때 바라본 이 구조물은 외딴섬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동십자각만큼의 문화인류학적 가치와 역사적 배경이 없는 ‘보행섬’을 바라볼 때면, 원래는 섬이 아닌 동십자각이 떠오릅니다. ‘보행섬’을 향한 동경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경복궁의 망루 동십자각 / 사진. ⓒ김현호
보행안전시설물의 구조 시설기준에 따르면, 우리의 도시에는 차량의 속도를 줄이고 보행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구조물이 설치됩니다. 과속방지턱, 지그재그 형태의 도로 그리고 보행섬이 그 사례입니다. 보통 교차로의 자투리 공간이나 넓은 도로의 가운데에 보행자를 위한 일시적인 쉼터를 만들어놓는데, 이를 보행섬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이 보행섬은 한여름 햇볕을 가려주는 차양막, 잠시 걸터앉을 수 있는 간이의자,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한 옐로카펫 등을 모아놓은 유니버설디자인(성별, 나이, 장애 유무 등과 관계없이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는 범용디자인을 말합니다)의 장(場)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특히 근사한 조경으로 꾸며진 보행섬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은 지나칠 수 없습니다.
도시의 보행섬 / 사진. ⓒ김현호
버려진 보행섬마다 꽃이 피었다도시의 보행섬은 하나의 작은 숲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각 도시의 자치단체들도 유휴 공간에 적극적으로 녹지를 조성 중인데요. 도시마다 보행섬은 물론 자전거 전용도로까지 확충하면서 담당자들이 여러해살이풀과 나무를 집중적으로 식재하기도 했습니다. 교차로마다 존재했던 보행섬 중에는 아예 차량이 회전할 수 있는 곳을 막아 더욱 넓은 공원으로 조성한 곳도 있습니다. 봄마다 각 구청의 공원녹지과 직원들이 구슬땀을 흘린 결과입니다.

나무의 식재에도 정성이 가득합니다. 조경가 정영선 선생과 같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 공무원들이 직접 조경을 배워 계절에 어울리는 식물을 직접 식재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보행로마다 나무 그늘과 작은 숲을 조성해 시민들의 쉼터를 만들어내는 것이 이들의 작은 바람입니다.
도시의 보행섬 / 사진. ⓒ김현호
도시에 숲이 조성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몇 년 전 국립산림과학원은 위성 영상자료와 현장 관측자료를 AI 기술로 연구했습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도시 숲 인근 지역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그렇지 않은 곳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도심 곳곳에 식재한 나무와 크고 작은 숲들이 열섬 현상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미세먼지 저감 효과에도 탁월하다는 방증입니다. 이처럼 보행섬은 보기에만 근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이롭게 해줍니다.보행자들이 신스틸러를 닮은 이 장소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중요합니다. 보행섬이 멋진 숲으로 변신해 미세먼지까지 줄여주더라도, 아무도 찾지 않는 장소로만 남는다면 의미가 없겠죠. 하지만 걷기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높아지면서 보행섬이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그의 저서인 『공간의 생산』서 이를 ‘재현의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도시의 행정을 맡는 관료들이 물리적으로‘공간을 재현’하면, 우리와 같은 평범한 보행자들이 그곳을 직접 거닐며 의미를 더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보행섬을 멋지게 조성하는 것만큼이나 그곳을 열심히 걷는 보행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도시의 보행섬 / 사진. ⓒ김현호
단풍나무 씨앗(열매)

“엄마가 칠십 년 넘게 살면서 단풍나무에 씨앗이 이렇게 눈에 띄는 곳에 달린 건 처음 알았다. 그 이후론 단풍잎 대신 이 씨앗만 보이네. 집에 있는 책마다 책갈피 대신 꽂아 뒀단다”여름이 시작될 무렵 양가(兩家) 어머니께 단풍나무 씨앗(또는 열매, 이하 '씨앗'으로만 표기)을 알려드렸습니다. 언젠가 도감을 읽다가 알게 된 단풍나무 씨앗은 독특한 모양과 색깔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름만큼이나 화려한 단풍잎 사이마다 감춰진 그 씨앗은 볼 때마다 신기함을 자아냅니다.
단풍나무 씨앗 / 사진. ⓒ김현호
단풍나무 씨앗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나무다’하며 그려 놓은 것처럼 고유의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그렇게 매달려 있습니다. 올해 봄부터 가족들과 산책할 때마다 단풍나무 씨앗을 소개했는데 반응이 한결같습니다. “단풍나무에 씨앗이 있어? 이게 그 씨앗이라고?”

해마다 가을이 되면 나뭇잎 전체를 붉게 물들이는 단풍나무의 특징이 오히려 꽃이나 씨앗의 존재를 떠올리기 어렵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단풍나무 씨앗은 주인공은 아닌 신스틸러에 가깝습니다. 신기한 점이 하나 더 있는데요. 꼭 프로펠러의 날개처럼 생긴 단풍나무 씨앗은 수분이 바싹 마른 순간에 빠르게 회전하며 멀리 날아간다고 합니다. 진화의 산물이라고 봐야겠죠? 사실은 ‘프로펠러를 닮은 단풍나무 씨앗’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단풍나무 씨앗이 프로펠러의 원조이기 때문이죠.
단풍나무 씨앗 / 사진. ⓒ김현호
이팝과 조팝

벚꽃이 온 도시를 한바탕 물들였다가 지고 나면 숲과 공원은 더 이상 인파로 붐비지 않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인 계절은 벚꽃 잎이 다 지고 시작됩니다. 희끗희끗한 아버지의 뒷모습처럼 이팝나무와 조팝나무가 꽃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근사하기로 유명한 산딸나무도 이 시기에 장관을 이룹니다. 벚꽃만큼이나 하얀 물결을 이루는 이 세 가지의 나무는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이름처럼 아름답습니다.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 세대쯤,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에 흰 쌀밥처럼 수북한 이팝나무, 조(좁쌀)로 지은 밥처럼 보이는 조팝나무는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벚나무보다 더 큰 위로를 주었을 터입니다. 영화를 보며 마음을 의지하게 되는 든든한 신스틸러처럼 말이죠.
[위에서부터] 이팝과 조팝
산수유와 함께 층층나무과에 속하는 산딸나무도 늦봄이 되어서야 특유의 우아한 꽃을 피우는데, 이를 처음 보면 ‘어떻게 나뭇잎이 하얗게 되었나’하고 놀라움을 품게 되기도 합니다. 겨울에 포인세티아의 잎이 붉게 물드는 것처럼 나뭇잎이 하얗게 센 것인가 살펴보지만, 사실 산딸나무의 꽃잎 자체가 하얀 것입니다.

초여름까지 각종 꽃나무가 이토록 사연 많은 꽃을 피우지만, 벚꽃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합니다. 그러고 보니 벚꽃 이후에도 식물의 개화는 이어지지만, 신경을 쓰지 못하고 살았나 봅니다. 내년에도 다시 만날 수 있으니 너무 아쉬워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일상 속 신스틸러보행섬, 단풍나무 씨앗, 이팝과 조팝나무처럼 우리는 주변에 펼쳐진 강렬한 장면을 목격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의 나들이에서는 잠시라도 보행섬에 머물며 도시의 신스틸러를 한번 찾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마도 단단히 마음먹고 찾아보면 우리 곁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신스틸러가 있을 것입니다. 저도 다시 한번 산책을 시작하려 합니다.

김현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