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철의 딜 막전막후] 도마 위에 오른 IPO '깜깜이 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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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철 증권부 기자▶마켓인사이트 7월 9일 오후 4시 20분
올해 초 이노그리드의 코스닥 상장 승인 여부를 가리는 상장위원회 회의에선 격론이 오갔다. 심사위원 사이에 의견이 갈렸다. 상당수는 상장 미승인 의견을 냈는데, 일부는 적격성을 더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단 결론은 미승인으로 났다. 하지만 최종 관문인 시장위원회에서 다시 한번 치열한 논의 끝에 이노그리드의 상장 예비심사를 승인했다.
지난달 상장을 눈앞에 두고 회사와 투자자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거래소 시장위원회로부터 상장 예심 승인 결과에 대한 효력 불인정 처분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최대주주 분쟁을 누락했다는 이유에서다. 상장위원회와 시장위원회, 다시 한번 시장위원회 회의를 거치며 천당과 지옥을 오간 셈이다. 이노그리드조차 공식적으로 회의에서 어떤 내용이 논의됐는지 알지 못한다. 회사 관계자도 배제된 채 몇몇 거래소 관계자와 심사위원들이 ‘밀실 회의’를 하기 때문이다.
논란 부르는 거래소 '밀실 회의'
거래소 기업공개(IPO) 심사는 거래소 심사팀이 자료 및 실사 조사를 통해 만든 보고서를 올리면 위원회에서 그를 기반으로 적격성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IPO 기업은 공식적으로 승인 여부만 들을 수 있다. 승인이 불발된 경우에도 그 사유를 간략하게 공개할 뿐 회의에서 어떤 안건이 어떻게 논의됐는지 과정을 알 수 없다.회의가 베일에 싸여 있다 보니 기업의 상장 예심 결과에 따른 갈등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선 해당 기업의 어떤 부분이 미비해 상장이 무산된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어 의혹만 확산한다.
이노그리드는 의도가 불순한 이의 투서 한 장 때문에 심사가 왜곡됐다며 거래소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삼쩜삼을 운영하는 자비스앤빌런즈는 이해상충 관계인 세무사회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심사위원 등이 심사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의혹을 제기했다.현행 심사 구조는 심사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거래소의 편향성을 배제하고 의사결정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위해 거래소와 심사위원회를 분리한 구조다. 상장위원회에는 거래소 상장 담당 상무, 비상근 외부 위원 4명, 외부 전문가 4명이 참여한다. 시장위원회는 외부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된다.
"심사 의사록도 공개해라"
상장은 단순히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임직원은 물론 주주도 주요 이해관계자다. 벤처캐피털(VC)이나 사모펀드뿐만 아니라 코넥스시장이나 K-OTC 등을 통해 일반 투자자도 비상장사 투자를 활발히 하고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만큼 투자자 입장에서도 구체적 내용을 알 권리가 있는데 거래소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일각에선 각 위원회의 회의록 등을 공개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 등도 회의록을 공개한다. 논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쓸데없는 공방이나 논란을 막고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거래소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비상장사인 기업의 치명적인 영업 기밀에 해당하는 경우가 대다수여서 회의 내용을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래소는 상장폐지 사안의 경우엔 2019년부터 심의 회의록을 공개하고 있다. 상장폐지 심의 과정의 투명성에 대한 비판이 높아진 직후다. 해당 회의록에는 심의 결과와 주요 근거가 포함된다. 회의에서 어떤 의견이 오갔는지도 담긴다. 기업의 영업 비밀과 개인정보, 기타 거래소 업무 수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항 등은 제외해 문제의 소지를 없앴다. 일각에선 최소한의 방어권을 행사하거나 개선 방안을 수립할 수 있도록 기업과 주관사 등 이해관계자에게만이라도 공개해 달라는 의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