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시장 모두 가진 TSMC…'헝거 마케팅'으로 빅테크 줄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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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진정한 승자' TSMC…폭풍질주 비결“TSMC는 무너뜨리기 힘든 난공불락의 성(城) 같다.”
고객을 배고프게 만든다
한정물량 내세워 가격경쟁 유도
아무리 물량 적어도 거부 안해
파운드리 점유율 62% 압도적
3년전 삼성 시총 추월…격차 벌려
'넘사벽' 첨단 패키징 기술 앞세워
애플·엔비디아 반도체 독점 공급
"TSMC 천하 당분간 지속될 것"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 대만 TSMC에 대한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의 평가다.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글로벌 기업을 차례차례 밟고 올라선 삼성전자지만, 파운드리 사업에 본격 뛰어든 지 5년이 다 되도록 TSMC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어서다. 수율(생산품에서 양품이 차지하는 비율)로 대변되는 기술력, ‘캐파’로 불리는 생산 능력, 고객과의 우호적인 관계, 협력사 생태계 등 경쟁의 성패를 가르는 분야마다 TSMC에 한참 밀리는 상황이다. 이 관계자는 “워낙 빈틈이 없다 보니 반격의 기회조차 제대로 잡기 힘들다”고 말했다.
최첨단 공정 90% 장악
시장점유율 61.7%, 시가총액 1조달러(약 1381조원) 돌파. TSMC를 설명할 때 뒤따르는 화려한 수식어의 원천은 하나로 귀결된다. 최첨단 공정 기술력. TSMC는 매년 5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앞세워 7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파운드리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삼성전자 인텔 등 파운드리 경쟁사가 ‘3㎚ 공정 세계 최초 양산’ 같은 타이틀을 차지해도 승자는 언제나 TSMC다.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그림은 항상 되풀이된다. 경쟁사보다 두 배 이상 높은 70% 수준의 높은 수율과 철저한 납기 준수를 통해 고객사의 신뢰를 얻은 덕분이다.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TSMC의 장점은 더 부각되고 있다. AI 시대엔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저전력·고성능 반도체의 수요가 계속 커지는데, 이를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곳이 TSMC여서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 엔비디아 고객사들이 자체 AI가속기를 개발하는 ‘탈(脫)엔비디아’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TSMC의 고객사는 더 늘고 있다. 공장이 없는 이들 빅테크가 칩을 제조하려면 TSMC를 찾을 수밖에 없어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인텔과 달리 TSMC는 파운드리 한 우물만 파고 있기 때문에 고객사와 사업영역이 겹치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첨단 패키징 육성 ‘선견지명’
TSMC의 ‘길목 지키기’ 전략도 가파른 성장에 한몫했다. 여러 칩을 묶어 하나의 칩처럼 작동하게 하는 ‘최첨단 패키징’ 시장을 선점한 게 대표적이다.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단품 칩으론 고객사의 요구를 충족하기 어려워지자 이걸 들고나왔다. D램을 쌓아 만든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묶어 만드는 AI가속기가 최첨단 패키징의 산물이다.TSMC는 약 10년 전부터 ‘CoWoS’로 불리는 최첨단 패키징 기술을 개발, 삼성전자로부터 대형 파운드리 고객사 애플을 낚아챘다. 최근엔 엔비디아의 AI가속기 패키징 물량을 독식하며 매 분기 실적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반도체기업 고위 관계자는 “TSMC의 잘 짜인 최첨단 패키징 라인을 둘러보고는 경쟁해서 이길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며 “AI 시대의 진짜 수혜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
작은 고객사도 무시하지 않는 경영철학도 지금의 TSMC를 만든 힘 중 하나다. 엔비디아가 초기 벤처기업이던 2000년대 초반, “제발 우리 칩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TSMC만 뿌리치지 않았다.영리한 마케팅도 최근 관심을 받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TSMC의 ‘헝거 마케팅’(한정된 물량만 판매해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더 자극하는 마케팅 기법)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내년에는 파운드리 공급 부족 가능성이 높다. 가격을 올려주지 않으면 원하는 만큼 만들어줄 수 없다”는 메시지를 고객사에 전달하자 몸이 단 애플, 엔비디아 등이 이를 받아들였다.
TSMC에 리스크가 없는 건 아니다. 생산시설이 밀집해 있는 대만의 지정학적 위험과 지진 등 자연재해가 가장 큰 위협 요인이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