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라고 무시마라, 얼마나 세련되게 살아가는지 아는가 [서평]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이정환 옮김/나무생각
208쪽|1만6800원

밟혀도 베여도 살아남는 잡초
“잡초에게 역경은 기회”
잡초의 끈질기고 강인한 생명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조용하고 끈질기게 살아남는 잡초들의 전략>은 그 비결을 담았다. 일본 식물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 시즈오카대 교수가 썼다.

잡초는 신비한 식물이다. 길가나 공원, 논밭 등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다. 다른 식물은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다. 바로 그 점을 잡초는 이용한다. 그것도 아주 세련된 전략으로. 저자는 “열심히 노력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잡초 근성’이란 말이 있지만 잡초는 무조건 노력만 해서 살아남는 게 아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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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랭이는 줄기가 쉽게 찢긴다. 줄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저기에 마디가 있다. 이 마디마다 새로운 뿌리와 새로운 싹이 나온다. 바랭이를 낫으로 베어낸 후 잘린 줄기를 방치하면, 거기서 바랭이는 다시 자라난다. 저자는 “땅이 갈리거나 풀을 베는 행위가 이뤄지는 밭은 잡초 입장에서도 위험한 환경”이라며 “밭에서 사는 잡초는 사실 잡초 중에서도 선택받은 엘리트”라고 했다.

잡초는 ‘밟혀도 밟혀도 다시 일어난다’는 이미지가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밟혀도 죽지 않는 잡초가 있다. 애기땅빈대가 그런 예다.

애기땅빈대는 밟히지 않는 곳에서는 줄기를 위로 뻗지만 밟히는 장소에서는 땅바닥에 잎을 찰싹 붙이고 옆으로 뻗어 나간다. 사람들이 잘 걸어 다니는 곳에는 식물이 못 자란다. 애기땅빈대는 오히려 그런 곳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질경이도 사람에게 밝히기 쉬운 장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질경이의 씨앗은 점액질을 갖고 있다. 씨앗은 바닥에 붙어 있다가 그 위를 지나는 사람의 신발에 옮겨붙는다. 덕분에 멀리까지 씨앗을 퍼뜨릴 수 있다. 저자는 “아마 길에 자라난 질경이들은 모두 밟히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잡초는 혹독한 겨울도 이겨낸다. 생존의 한 가지 방법 중 하나는 ‘로제트’ 형태로 몸을 만들어 겨울을 나는 것이다. 겨울 땅 위를 내려다보면 잡초들이 줄기를 뻗지 않고 펼친 잎을 바큇살 모양으로 겹쳐 땅바닥에 착 달라붙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겨울의 땅바닥은 공기에 비하면 의외로 따뜻하다. 그래서 땅에 최대한 달라붙은 채 외부 공기와의 접촉을 줄인 것이 로제타 형태다. 또 잎은 방사형으로 펼쳐 최대한 광합성을 많이 할 수 있게 했다. 민들레 같은 국화과 잡초가 이런 식으로 겨울을 보낸다. 겨울 동안 광합성하며 모은 영양분 덕분에 로제타 형태로 겨울을 보낸 잡초는 봄이 되면 단번에 줄기를 뻗어 다른 식물보다 앞서 일찌감치 꽃을 피울 수 있다.

잡초의 기본 전략은 이렇게 자신에게 다가온 곤란과 역경을 도움이 되도록 바꾼다. 잡초 입장에서 역경은 기회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