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재다능' 스티븐 허프 "예술만큼 가슴 뛰게 하는 일 없어"

세계적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

오는 13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16년 만에 단독 리사이틀 열어
샤미나드, 리스트, 쇼팽 작품 조명

"모든 예술 활동의 근원은 시적인 충동"
"매일매일 가장 창의적인 사람 되고 싶어"
ⓒJiyang Chen
영국 출신의 스티븐 허프(63)는 국제적 권위의 클래식 음반상인 그라모폰상을 무려 8차례 품에 안은 거장 피아니스트. 지금까지 60장 이상의 앨범을 발표한 피아니스트인 만큼 평생 악기 연주에만 매달렸을 것이라 짐작하기 쉽지만, 오히려 그는 ‘다재다능’이란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예술가다. ‘40곡 이상의 작품을 써낸 현대음악 작곡가이자 개인전을 여는 화가, 소설과 에세이를 펴낸 작가.’ 이 모든 수식어의 주인공이 바로 허프라서다. 2009년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그의 이름을 <총, 균, 쇠>의 저자인 인류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 등과 함께 ‘살아있는 박식가들’ 20인 명단에 올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허프가 오는 13일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피아노 리사이틀을 연다. 그가 국내 단독 리사이틀을 갖는 건 2008년 이후 16년 만이다. 허프는 이번 공연에서 샤미나드의 피아노를 위한 콘서트 에튀드 ‘가을’, ‘이전에’, 변주곡 A장조, ‘숲의 요정’과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 등을 들려준다.
ⓒSim Canetty-Clarke
허프는 11일 인터뷰에서 프랑스 여성 작곡가 샤미나드를 집중 조명하는 이유에 대해 “내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자리한 작곡가의 특별한 작품들을 꼭 들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제가 어릴 적 처음 손에 쥐었던 클래식 음반에 담긴 음악이 바로 샤미나드의 곡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각별하죠. 샤미나드의 작품엔 그만의 독특한 목소리와 솔직한 감정 표현, 훌륭한 감각이 여실히 녹아있습니다. 피아노로 그 모든 악상을 생생하게 불러낼 겁니다.”

쇼팽과 리스트를 두고선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축약해서 표현할 만큼 두 작곡가의 음악적 특성은 완전히 다르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들의 작품을 한 무대에 올리고 싶었다”고 했다. “리스트가 정교하게 만들어낸 단악장 서사시는 마치 인류의 극적인 이야기를 전부 품고 있는 것처럼 장대합니다. 반면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3번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품입니다.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힘보단 한 명의 벨칸토 가수가 내뿜는 서정적인 감정의 분출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죠. 아주 흥미로운 차이를 느끼게 되실 거예요.”
ⓒSim Canetty-Clarke
1983년 뉴욕 나움부르크 콩쿠르에서 우승한 허프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정상급 악단들과 협연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쌓아온 인물. 그가 음악과 미술, 문학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을 넘나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모든 작업의 근원은 시적인 충동이었다”며 “난 악기를 연주하고, 작곡하고, 글을 쓰는 일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의식적으로 많은 장르에 도전하고 싶었던 건 아닙니다. 내 안에서 끊임없이 생겨나는 새로운 영감들을 밖으로 표출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않음으로써 자유롭게 열매를 맺도록 한 것뿐입니다.”그 모든 일을 동시에 해내는 게 종종 힘들지는 않냐고 묻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매일매일 어려움의 연속이다!”라고 답했다. “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연주도 하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작곡도 하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죠. 그런데 이 모든 걸 할 시간은 너무 부족합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요. 단순히 하루 중 몇 분간 고민하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 머릿속 전체를 에워싸는 무거운 문제거든요. 지금까진 불편한 상황 속에서도 정신을 제대로 붙잡고 여러 활동에 힘써왔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어요. 하하.”
ⓒRobert Torres
그는 ‘박식한 피아니스트’란 세간의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고도 했다. “나를 둘러싼 표현을 일일이 의식하진 않으려 하지만, 스스로 유식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인터넷에 떠다니는 수많은 정보와 의견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는 편이거든요. 정보의 홍수 시대에 자유롭게 몸을 맡기고 싶은 유혹은 늘 있지만, 그렇게 되는 순간 연주자로서 작곡가들의 내면세계에 깊이 파고드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현실과 조금은 떨어져서 음악에 온전히 집중하는 건 연주자로서 분명 노력해볼 만한 가치가 있어요.”

끝으로 그는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기보단 현재에 온전히 집중하고, 그때그때 가장 창의적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제가 연주하는 작품 하나하나, 제가 올라서는 무대 하나하나가 매번 새로운 경험이자 도전처럼 느껴집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이 마음만큼은 사라지지 않더군요. 그래서 전 앞으로도 더 높은 수준의 소통과 경험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예술만큼 제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