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이 맞닿는 순간' … 116년만에 돌아온 사직제례악

황제국으로서 거행한 제례 위엄 선봬
서울 국립국악원 예악당서 11·12일 공연
이건회 정악단 예술감독 "유네스코 등재 희망"
"땅이 두텁다함은 만물이 모두 형통함이라. 농사는 보배이니 길이 그 성숙됨을 보리로다."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 위 사직제례의 주제 의식이 한자와 한글 풀이로 새겨졌다. 만물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풍요를 기원한 마음을 담아 신을 보내는 의식이 이뤄지자 하늘과 땅이 맞닿는 순간일까. 무대 천장과 바닥이 경계없이 빛났다. 제관들과 음악을 연주하는 정악단과 무용단원 등 120여명이 오른 무대는 웅장함을 더하고 있었다.
10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예약당에서는 '사직제례악' 최종 리허설 무대가 열렸다. 사직대제(社稷大祭)는 땅과 곡식의 신에게 군주가 올리는 제사다. 삼국시대때부터 이러한 제례를 거행한 기록이 있다. 이번 무대에 오른 사직제례악은 조선시대 국가 안녕과 풍요를 기리던 제사에 사용된 음악이다. 1908년 일본의 전통문화 말살 정책으로 맥이 끊겼다가 1988년 제례 절차가 복원됐고, 2014년 국립국악원이 제례에 쓰인 음악을 복원해 냈다. 그리고 10년만인 올해, 악기 편성과 복식, 의물까지 보완해 낸 결과물이 무대에 올랐다. 제사 주체는 조선의 황제다.
국립국악원이 선보인 사직제례악은 제례 절차를 심도 있게 다루면서 공연으로서 심미적인 요소를 두루 챙기려고 노력했다. 제관들이 발걸음을 맞춰 한줄로 걸어 나오면, 타악기인 진고·영고·절고 소리가 울려퍼지며 신을 불렀다. 깃털 달린 무구를 쥔 무용수 8명이 군무를 추는 사이 대한제국 황제가 등장했다. 번영을 상징하는 용, 꿩, 산호 등 12가지 상징을 수놓은, 화려한 황제의 의상은 비운의 시기로 흘러가던 조선 말기와 대조돼 한편으론 애처롭기도 했다.
사직대제는 종묘대제와 함께 군주가 주관한 핵심 의례였다. 종묘제례악은 왕의 후손들이 꾸준히 계승하면서 보전됐다. 반면 사직대제는 자연에 대해 지낸 제사여서 보전을 주도할 주체가 없어 복원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이날 리허설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송지원 고증복원위원은 "2014년 복원된 사직제례악은 조선 정조 대 사직서의궤를 근거로 했었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제국을 선언한 이후의 상황을 국가전례서인 '대한예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악가무가 수반된 종합 예술을 무대에 올려보자는 것이 2024년 공연의 취지"라고 덧붙였다. 모든 의례가 황제국의 위격에 맞도록 재편됐는데 단적인 예로 복식에 수놓인 상징물이 왕은 9개지만 황제는 12개다. 무용수들의 의상도 정조 대 기록된 푸른 색에서 대한예전에 따라 붉은 색으로 바꿨다. 공연에서는 그동안 국악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전통 관악기 '관'도 사용됐다. 올해 국립국악원과 국가무형유산 김환중 단소장이 함께 복원해낸 악기다. 이밖에 국악원이 국가무형유산 기능 보유자와 함께 복원한 화, 우 등도 함께 무대에 올랐다.

공연 콘텐츠로서의 요소도 적절히 가미했다. 공연 연출을 담당한 이대영 중앙대 예술대학원장은 간담회에서 "제단과 제관을 무대 가장 앞에 배치해 제례를 온전히 보여주고자 했다. 관객이 신이 되는 듯한 구도다. 또 음악에 맞는 영상을 곁들여 시각적인 요소도 확보하고자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건회 정악단 예술감독은 "이번 공연을 계기로 사직제례악이 종묘제례악처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이 됐으면 한다"며 "제례에 등장하는 '예의사'가 오늘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혹은 외교부 장관 직급인데, 이분들이 세계 무대에서 사직제례악을 알리는 날이 왔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공연은 11일부터 이틀간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다.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