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출근길, 전장연이 지하철을 멈춰 세우는 이유 [서평]

전장연 지하철 시위 기록
"장애인 위한 지하철은
시민 모두를 위한 지하철"
1분 1초가 아쉬운 바쁜 출근길, 지하철을 멈춰 세워 빈축을 사는 이들이 있다. 2021년부터 4년째 지하철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다.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 간부 등에 대해 교통방해죄 등 혐의로 다섯 차례 형사 고소하기도 했다. 이들은 왜 다른 시민에게 불편을 초래하고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지하철을 멈춰 세우고 있을까.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정창조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의 대화로 쓰여진 책 <출근길 지하철>은 이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이다. 저자들은 "출근길 발길을 재촉하거나 시위로 정차하지 않고 지나가는 지하철에 탄 시민들에게 닿지 않는 우리의 사정을 온전히 말하고 전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이들은 세상에 절실함을 알리기 위해 시위 장소로 출근길 지하철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청와대나 국회 앞 시위를 비롯해 머리를 밀거나 며칠을 굶으면서 투쟁도 해봤지만 들어주는 이들이 없었다. 출근길 시위를 시작하고 나서야 언론에 기사가 나오기 시작하는 등 전장연의 주장이 공론장에 나오게 됐다는 설명이다.

"시민들을 볼모로 삼는다" "시민들 발목을 잡는다"는 비난에 박 대표는 이렇게 답한다.

"저도 알아요. 시간에 맞춰서 출근하고 학교 가고 하는 거, 그런 일상들이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다 중요할 거예요. 그런데 어떤 장애인들은요, 말 그대로 이동을 할 수가 없어서 학교에 가지 못해왔어요.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까 노동도 할 수가 없지. 출근길 지하철이 1분만 지연돼도 그게 그렇게 문제라면서요. 일상 전체가 1분 늦어지는 거니까. 그런데 장애인들은 1분이 뭐야, 한평생 그 일상을 누릴 수가 없어요." (31~32쪽)
전장연은 장애인에게 편한 대중교통은 우리 모두에게 편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통해 설치된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와 저상버스의 혜택은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유모차를 끄는 부모 등 다양한 시민에게 돌아간다. 소수자를 위한 안전망을 구축하는 건 사회 전체의 안전과 포용을 강화하는 노력이란 설명이다.

이들의 투쟁은 과거 미국에서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위해 뉴욕 한복판 매디슨 애비뉴를 막았던 주디 휴먼을 떠올리게 한다. 휴먼은 이렇게 말했다. "장애는 사회가 장애인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데 실패할 때만 비극이 된다." 몇십년 간 이어진 투쟁의 결과 오늘날 미국에선 버스가 천천히 주저앉아 휠체어를 태우고 버스 기사가 휠체어에 안전벨트를 채우느라 시간을 쓰는 게 익숙한 일이 됐다.

책 속엔 이동권뿐 아니라 탈시설, 노동권 등 장애인 인권과 관련한 다양한 이슈와 이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 기록돼 있다. 다만 주장과 그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상당히 거칠고 날 것의 형태로 서술돼 있어 일각에서 반론을 제기할 여지도 많다. 이들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한번쯤 토론의 계기로 삼기 위해 읽어봐도 괜찮겠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