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고시 준비할까"…변호사도 줄줄이 낙방한다는 시험

경찰서 과장 급 ‘경정’
승진시험 난도 높기로 유명
법조인 불리한 구조 “큰 코 다쳤다”
경찰청 홍보대사인 배우 김보성씨. 해당 기사와 관련은 없음. /경찰청
“경찰 승진 시험이 매우 어렵다. ‘이럴 바엔 고시를 준비하자’란 생각이 들어 방향을 틀었다.”

수도권 지방자치단체에서 서기관으로 일하는 김모씨는 10년여 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경찰대 출신인 김씨는 경감 계급으로 재직하던 당시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면서 승진 시험을 준비하다 '차라리 고시를 할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김씨는 “승진 시험 과목이 행정고시 일부 과목과 유사해 유리했다”고 했다.경찰 내 ‘경정’ 승진 시험은 난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매년 경찰 1500명 넘는 인원이 준비하고 이 중 90% 이상이 탈락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서울대 급’ 성적을 받았던 경찰대 출신이나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경찰들도 떨어지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심사, 특별, 시험 등 3가지의 승진 제도를 운영한다. 심사는 각종 정성·정량 평가를 종합해 순위를 정하는 방식이다. 특별은 그 해 우수한 실적을 낸 케이스를 승진시키는 것이다. 심사와 특별은 보통 해당 계급의 근속 연차에 비례한다. 하지만 시험 승진은 다르다. 계급 근속 연차가 길지 않아도 승진을 할 수 있다.

올 초 시험으로 승진한 경정 A씨의 사례가 그렇다. A씨는 고교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관내에서 모의고사 1등을 할 정도로 지역 내 유명한 수재였다. 고교시절 의·치대 합격증을 반납하고 경찰대를 택했다. 공부에 도가 튼 그도 “경정 시험 난도는 수능 상위 0.1%급”이라며 “보다 빠른 승진을 위해 시험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승진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공무원 학원에서 강의를 수강했다.약 5년째 시험을 준비하는 B경감도 마찬가지다. 시험을 총 4번 떨어졌다. 시험 승진을 준비하기 위해 지구대·파출소 등 개인 자유시간이 많은 보직을 찾아다녔다. B경감은 “주변 친구들과의 만남을 다 끊고 공부만 매진했는데도 승진 문턱을 넘지 못했다”며 “고시 낭인처럼 삶이 피폐해진 것 같다”고 털어놨다.

경정 승진 시험 1교시 과목은 헌법 40문제·경찰행정학 40문제로 객관식이다. 2교시는 형사소송법은 주관식이다. 사례형 4문제(총 50점)·단문형 2문제(총 50점)가 나온다. 매년 1월에 시험이 있다. 올해 1745명·지난해 1476명·2022년 1439명이 시험에 응시했다.

가장 큰 특징은 법전을 달달 외우다시피 해야한다는 점이다. 이때문에 법조인 출신 경찰들이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낭패를 보기 일쑤다. 법조인들은 시험을 볼 때 법전을 볼 수 있는 ‘오픈북’ 시험에 익숙하다.2014년부터 경찰청은 20~40명씩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법조인을 경찰(변호사 시험 특채)로 채용했었다. 시험 승진에 한 번 낙방했던 변호사 시험 특채 C 경정은 “법조인이 주로 보는 시험과 경찰 내부 승진 시험은 형태가 전혀 달라 변호사들도 매우 당황해한다”며 “고교 때 난다긴다하던 경찰대 출신의 수재들과 경쟁하는 것도 버거운 일”이라고 말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