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유화책에 의료계 반발…의대 교수들 "전공의 탄압 수단"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의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와 학업을 중단한 의대생의 복귀를 위해 유화책을 내놓은 뒤 의료계 강경 목소리가 더욱 확산하고 있다.

의대 교수들은 '9월턴'을 기준으로 정부 조치가 달라지면서 또다시 전공의 '갈라치기'에 나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대생들이 올해 대다수가 의사 국가고시를 거부할 것이라고 밝히자 전공의 대표도 '복귀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의대 교수들 "정부 입맛대로 규정 고쳐"

서울대의대, 성균관대의대, 울산대의대, 가톨릭대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등이 포함된 34개 의대 교수들은 11일 입장문을 내고 "보건복지부는 사직서를 수리해라마라 하지 말고 온전히 병원과 전공의에게 맡겨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복지부가 원칙 없이 특례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마음대로 관련 규정을 뜯어고치고 있다"며 "차별적, 선택적 수련특례 적용은 전공의들을 위협하고 탄압하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했다.

정부는 전공의 복귀 여부에 관계없이 행정명령을 철회하기로 한 데 이어 전날 의대 학기제를 학년제로 바꿨다. 개원의 등을 대학 교원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자격 기준도 완화하기로 했다.의료 공백이 길어지고 있는 대학병원의 교수와 전공의 인력을 최대한 확보하고 의대생 유급으로 내년 의사 인력 배출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전공의들의 내년 전문의 시험 응시 가능 여부에 대한 문의가 잇따르자 복지부는 전날 설명자료를 통해 "수령규정과 관련된 공법상 효력이 6월 4일 이후에 발생한다"며 "9월 하반기 모집에 응시하지 않는 전공의는 내년 3월 복귀가 불가하다"고 밝혔다. 9월에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들은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취지다.

이날 교수들의 성명처럼 의사 사회 내부에선 이를 두고 정부가 또다시 전공의 갈라치기에 나섰다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9월턴' 복귀 전공의와 그렇지 않은 전공의 간 사직 수리 시점에 차이를 둬 결국 복귀하지 않은 사직 전공의들에게 책임을 물게 될 것이란 의미다.

전공의 설득 작업 나섰지면 복귀 규모는 미지수

복지부는 오는 15일까지 전공의들의 복귀·사직 여부를 확인한 뒤 결원을 확정해 17일까지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 '9월턴' 모집 인원을 확정해달라고 각 병원들에 요청했다.

수련병원별 하반기 모집인원이 정해지면 오는 22일 모집공고를 한 뒤 31일까지 원서를 접수하도록 일정을 정했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내년도 전공의 정원이 줄어들 수 있다고 각 병원에 전달한 상태다.

일각에선 서울 주요 병원, 인기과 등을 중심으로 결원을 채울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전공의들 사이에 '눈치싸움'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다만 정부가 잇따라 유화책을 내놓은 뒤 의료계 강경 목소리가 다시 번지고 있어 얼마나 많은 전공의들이 복귀할지는 미지수다.

이날 전공의 대상 설명회를 열고 복귀 여부 파악에 나선 수도권 A 대학병원 관계자는 "일부 전공의들이 개별적인 연락을 거부하고 있어 전체 공지 등을 돌려 병원에서 설명회를 열기로 했지만 얼마나 참석할지는 알 수 없다"며 "일부 병원에서 내용 증명 우편을 보내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라고 했다.

의대생, 국시 위한 개인정보 제공 동의 거부

의대생들은 상당수가 의사 국가고시를 거부할 것이라고 했다. 전날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는 "의사국가시험 응시 예정자인 전국 40개 의대 본과 4학년 3015명 중 2903명이 응답한 설문 결과 응답자의 95.52%인 2773명이 국시 거부를 표명했다"고 발표했다.

내년도 의사 국가 시험 응시 대상자 명단 확인을 위해 각 의대는 졸업 예정자 명단을 6월 20일까지 국시원에 제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가 필요하다. 의대생들은 이를 제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국시 거부 의사를 표했다는 것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런 결과를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학생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한다"며 "저도 (병원으로) 안돌아간다"고 밝혔다.

의대 교수들도 잇따라 성명을 발표하면서 '전공의 행정명령을 조건없이 취소'하고 '전공의 사직 시점을 2월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2025학년도 의대 정원 확대안 원점 재검토'까지 요구하고 있다.의료계 관계자는 "정부가 연이어 강경대응 원칙에서 물러나면서 '애초에 잘못된 정책을 시행했다'는 의료계 주장만 강화해준 상황이 됐다"며 "이런 상태에선 당분간 의료시스템 정상화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