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룰로이드 에로티카: 섹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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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섹스를 섹슈얼하게 그리지 않는 여성 성인 영화감독,
주목해야 할 섹션 [셀룰로이드 에로티카: 섹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해부]
도리스 위시먼을 조명하며
섹스플로이테이션이라는 장르(혹은 산업이라고 언급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하다)는 엑스플로이테이션(exploitation films), 혹은 착취 영화에서 파생된 것이다. 선정 영화라고도 불리는 이 영화들은 폭력과 섹스, 마약 등 금기의 영역을 영화화한 틈새 영화들로 영화 산업의 초기부터 성행하기 시작해 주로 이류, 삼류 극장들에서 상영되었다. 1930년대에 이 영화들은 성교육 캠페인 영화(sex education films), 성병 예방 영화(sex hygiene films) 등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성적 스펙터클을 상업화하면서 시장을 형성했다. 섹스와 엑스플로이테이션을 합성한 장르인 섹스플로이테이션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성행했던 분야로, 누드가 등장은 하되 법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로 성적으로 수위가 높지는 않은 영화들을 말한다. 섹스플로이테이션 영화들은 섹스, 누드, 섹슈얼리티 그리고 욕망으로 중무장한 새로운 카테고리의 영화였다. 이러한 영화들은 주로 일반 극장이 아닌 그라인드 하우스와 같은 성인영화를 전문으로 하는 상영관에서 상영되었다.
비슷하게 인식될 수 있지만 강조하건대 이 영화들은 포르노 영화들이 아니다. 사실 이 영화들은 포르노와의 유사점보다 차이점으로 설명이 되어야 한다. 성적인 스펙터클을 중심축으로 한다는 사실에서는 이 영화들이 1970년대 초부터 성행하기 시작한 포르노그래피 산업의 선조 격인 것을 부정할 수 없으니, 섹스플로이테이션에는 엄연한 작가주의가 존재했다.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섹스플로이테이션 영화들은 이 분야에서 활약했던 장인들과 그들의 영화들 중 한 편을 선정한 것이다. 총 8편의 상영작 중에 이 글은 도리스 위시먼의 <블레이즈 스타: 누드촌에 가다>에 주목하고자 한다.도리스 위시먼은 현재 필자가 번역하고 있는 책 <ReFocus: The Films of Doris Wishman (리포커스: 도리스 위시먼의 영화들)>(에딘버러 대학 출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녀는 단순히 섹스플로이테이션 산업에서 일했던 극히 드문 여성 감독 중 한 명일뿐 아니라(이 사실만도 대단하지만), 여성 감독으로 가장 많은 편수의 영화를 제작한 인물(총 31편)이기도 하고, 성인 영화로서가 아닌 아방가르드와 실험 영화의 영역에서도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는 감독이다.
그녀를 이 산업에 안착시킨 대표작 중 하나인 (이번 부천에서 상영되는) <블레이즈 스타: 누드촌에 가다>는 엄밀히 말해 누드 캠프 영화다. 누드 캠프 영화는 누디 큐티스(nudie cuties)의 한 종류이자 섹스플로이테이션의 하위장르로서 등장인물들이 누드로 출연하되 성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 비교적 건전한(?) 종류의 소프트코어 성인 영화들을 말한다. 영화는 영화배우 블레이즈 (블레이즈 스타)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녀는 할리우드의 답답한 시스템이 지겹기만 하다. 어느 날 우연히 누드 캠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누드 캠프에 흥미를 갖게 된 블레이즈는 근처의 누드 캠프를 찾는다. 나체의 사람들이 운동과 명상을 즐기는 평화로운 그곳에서 블레이즈는 활력을 얻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것은, 엄청난 양의 누드 씬에도 이 장면들에서 위시먼은 배우들의 주요 부분을 노출시키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도 여성은 알몸으로 수중 수영을 하고 카누를 타며 활과 화살을 쏘지만 이 장면들은 여성의 성기가 드러나지 않도록 모두 가려진 상태로 섬세히 촬영되었다. 이렇게 관음주의를 타파하는 방식의 (여성) 육체의 재현 방식은 위시먼의 영화들을 정의하는 중요한 경향이기도 하다.이러한 맥락에서 위시먼은 어쩌면 가장 역설적인, 즉 가장 남성중심적인 (창작자로서나 수용자로서) 섹스플로이테이션 산업에서 가장 여성주의적인 성인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부천에서 상영되는 8편의 영화 중 유일한 여성으로 그녀가 섹스플로이테이션 섹션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기에 도리스 위시먼의 영화사적인 위치와 그녀의 고집스러운 작품세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위시먼의 <블레이즈 스타: 누드촌에 가다>는 영화제 기간 동안 온라인으로 상영된다.
부천=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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