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보험 회계 논란 자초한 금융당국

당국, 실적 무관한 이슈도 '칼질'
원칙 중심의 섬세한 감독 필요

서형교 금융부 기자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의 원칙 자체는 좋다. 하지만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들이 회계기준을 악용해 단기 실적을 부풀리는 게 문제다. 이대로 방치하면 보험산업이 망가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가 ‘소멸계약의 기타포괄손익 회계처리’ 논란을 둘러싼 한국경제신문 보도(7월 9일자 A1, 2면 참조)에 대해 한 말이다. 금융감독원의 개입이 불가피했다는 일종의 항변이었다.그동안 보험사들은 보험계약이 해약, 사망 등으로 소멸하면 남아 있는 기타포괄손익을 당기손익으로 즉시 인식하거나(A안), 계약집합의 듀레이션(만기)에 걸쳐 나눠 반영했다(B안). 업계에선 “A안과 B안 모두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금감원은 최근 “B안은 맞고 A안은 회계 오류”라고 결론 내렸다.

기사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했지만 이번 사안은 ‘실적 부풀리기’ 논란과 무관하다. 금감원이 오류라고 판단한 A안대로 회계처리했던 한 보험사는 B안을 적용하면 순이익이 되레 수백억원가량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A안으로 회계처리를 한 것이 ‘실적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본지 기사를 본 당국 관계자는 왜 실적 부풀리기를 얘기했을까. 당국은 최근 보험사들이 ‘역대급’ 실적을 낸 배경에 IFRS17이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어느 정도 맞는 얘기지만, 그렇다고 모든 IFRS17 이슈가 ‘실적 뻥튀기’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부터 ‘IFRS17=실적 부풀리기’라는 프레임 속에서만 논의되고 있다.이번 소멸계약 회계처리 논란을 두고 업계의 반발이 유독 큰 이유다. 보험사들은 “회계법인에 자문해 각 기업의 사정에 맞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B안을 채택한 보험사도 금감원 결정에 불만을 드러냈다. 금감원이 업계와 충분한 소통 없이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지적이 많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설령 기준을 통일하더라도 점진적으로 맞춰나가야 하는데 이번처럼 회계 오류라고 판단을 내리면 불협화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도 이런 이슈가 많을 텐데 오류 판정 기준 등을 현실에 맞게 재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금융당국의 섬세한 감독이 필요한 때다. ‘기업의 자율 존중’과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보험업계의 실적 부풀리기는 분명히 바로잡되, 실적과 무관한 이슈까지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 이는 당국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보험업계와 회계법인 등과 충분히 소통하겠다”는 말이 공허한 구호로 남아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