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벗 '깜빡이' 켰지만 집값·고환율 부담…8월 보단 10월 인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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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기준금리 3.5%로 12회 연속 동결11일 오전 8시58분.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관 16층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실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입장했다. 그는 파란색 계열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옅은 푸른빛의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물가 둔화로 금리 인하 환경이 조성되고 있지만 동시에 외환·금융시장 불안이 커지는 딜레마 상황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 총재는 금통위 후 기자간담회에서 “물가만 보면 금리 인하를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지만 금융 안정에 대한 고려는 더 많아졌다”며 통화정책 결정에 큰 고민이 있음을 드러냈다.
물가상승률 2%대 안정세지만
환율 1400원 위협·가계부채 부담
"금리인하 시점 잘못된 시그널로
집값 상승 촉발해선 안돼" 신중
환율·채권가격 동반 하락
미국이 9월 금리 인하 나서면
10월에 따라서 내릴 가능성
○물가 안정-금융·외환 불안, 딜레마
이날 한은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향후 통화정책은 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하는 가운데 물가상승률 둔화 추세와 함께 성장, 금융 안정 등 정책 변수 간 상충 관계를 면밀히 점검하면서 기준금리 인하 시기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금리 인하 검토를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할 것”이라는 5월 의결문 표현에 비해 금리 인하 신호가 강해진 것으로 해석됐다.
이런 변화는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크게 둔화한 것과 관계가 깊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로 한은의 물가 목표인 2%에 근접했다.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2%로 이보다 더 낮다. 소비자들의 1년 후 물가상승률 전망치인 기대인플레이션율도 5월 3.2%에서 지난달 3.0%로 내려왔다. 이 총재는 “물가가 안정 추세를 보이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라고 말했다.하지만 이 총재는 금리 인하로 외환과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강하게 나타냈다. 이 총재는 “부동산 가격 오름세, 가계부채 증가세가 금융 안정에 미치는 영향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한은이 유동성을 과도하게 공급하거나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 잘못된 신호를 줘서 주택 가격 상승을 촉발하는 정책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금통위원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릴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주요 고려 사항 중 하나”라고 답했다.
실제 시장에선 금리 인하 기대가 높아지면서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이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6조원 증가하는 등 금융 불안 가능성이 커지는 모습이다. 부동산 가격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뚜렷한 상승세를 나타냈다. 고환율 상황도 이어지고 있다. 이 총재는 “시장이 금리 인하 메시지를 가지고 들썩이는 것은 너무 앞서나가는 것”이라며 “기대가 과도하다”고 했다.
○8월 인하 기대 사라져
시장에선 이날 통화정책방향 회의 결과를 매파적(통화긴축 선호)으로 받아들였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오후 3시30분 기준)은 전 거래일보다 5원90전 하락(원화 가치는 상승)한 1378원80전을 기록했다.이날 환율은 2원80전 내린 1381원90전에 출발한 뒤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이 공개되기 직전까지 낙폭을 반납하며 상승세를 보이다가 오전 10시30분 이후 하락세로 전환했다. 환율이 1370원대를 기록한 것은 이달 들어 처음이다. 국고채 금리는 상승(채권 가격은 하락)했다. 이날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043%포인트 오른 연 3.163%에 거래를 마쳤다. 국채 금리도 금통위 결과 발표 후 상승폭이 커졌다.금통위에서 ‘금리 인하’ 소수의견이 나오지 않은 데다 시장 기대를 경계하는 이 총재의 발언이 예상보다 강해 8월 금리 인하 기대도 사라지는 모습이다. 민지희 미래에셋증권 채권애널리스트는 “이 총재가 Fed의 통화정책이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미국이 9월 금리를 내린 후 10월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