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예상 뒤엎고…400만원까지 치솟은 '반전의 광물' [원자재 이슈탐구]

중국 경기 부진에도 슬금슬금 오르는 아연 가격

자동차·지붕·교량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
경기 부진·수요 타격에도 가격 상승
인도 등 예상 밖 수요처 기대
사진=게티이미지
비철금속 아연(Zinc) 가격이 지난달 하순부터 급반등해 t당 2900달러대로 올라섰다. 작년 중국의 경기 부진과 공급과잉으로 t당 2300달러까지 떨어졌던 가격이 지난 5월 글로벌 비철금속 랠리를 타고 3000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업계에선 일시적인 투기성 자금 유입에 따른 가격 상승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고, 지속 상승이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아연은 철, 알루미늄, 구리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금속으로 연간 생산량이 1400만t에 가까운 흔한 원자재다. 40~50%는 강판의 부식을 막는 도금 재료로 쓰인다. 아연 도금 철재는 지붕, 연통, 자동차, 싱크대 등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파이프, 교량, 도로 가드레일, 가로등을 비롯해 건설 자재로도 많이 쓰인다. 아연 가격 상승은 건설, 제조업에는 원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며, 반대로 네덜란드의 니르스타(Nyrster), 인도 힌두스탄징크, 한국 고려아연 등 아연 생산 기업들에겐 호재다.

암울한 예상 뒤엎고 선방하는 아연 가격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지난 12일(현지시간) 아연 선물 가격은 t당 2942달러에 거래됐다. 한 달 전에 비해 1.6%, 올해 초에 비해선 12.2%가량 오른 수준이다. 전 세계 아연 광산 생산량은 2022년 2% 감소했고, 2023년에는 1%, 2024년 1분기엔 전년 동기 대비 3% 추가 감소하는 등 공급이 줄어든 여파로 해석된다. 지난해 아연 가격 하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의 영향으로 주요 광산업체들이 감산에 나선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초까지 아연 가격 전망은 상당히 어두웠다. 국내 증권사 가운데 연초 고려아연의 실적을 전망하며 아연 가격 상승과 제련 마진(TC) 확대를 점친 곳은 거의 없었다. 로이터통신도 국제 납 및 아연 연구그룹(ILZSG) 자료를 인용해 "올해 아연 잉여량이 36만7000t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연은 매장량이 풍부하고 광산도 전 세계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공급을 늘리기도 쉽다. 호주, 캐나다, 미국과 이란의 매장량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고 채굴 규모를 기준으로 보면 중국, 호주, 페루 등의 생산량이 많다. 한국에도 경북 봉화군 등에 광산이 운영될 정도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지난해 중국 금속 기업들은 자국 경기도 안좋은 데 과잉 생산된 아연 정광을 사들여 제련소를 돌리기도 했다. 로이터통신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정련 아연 생산량은 지난해 6.7% 늘어난 데 이어, 올해 4.1% 증가해 글로벌 생산량 증가율을 3.3%로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인민은행의 통화 완화 기조 강화가 지난 5월 시장 심리를 뒷받침하며 비철금속 랠리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실제 지표는 좋지 않다. 6월 제조업 PMI가 전월과 동일한 49.5를 기록해 두 달 연속 50을 밑돌았다. PMI가 50보다 낮으면 경기 수축 국면을 의미한다.

예상 빗나간 이유…아연 수요처 확대?

지난 5월 비철금속 랠리 속에서도 아연은 유독 전망이 어두웠다. 단기 공급 병목 때문에 가격이 상승했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최대 소비처인 중국 건설시장은 여전히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코메르츠뱅크의 투 란 응우옌 상품연구책임자는 보고서에서 "철강의 주요 소비국인 중국 부동산 시장이 회복의 조짐을 보이지 않는 한 아연 수요는 계속 침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아연 가격이 살아난 데 대한 해석은 엇갈린다. 미 중앙은행(Fed)의 통화 완화와 중국 경기 반등에 대한 기대감이 원인이라는 해석이 흔히 나온다. 일각에선 친환경 발전 등에 아연이 의외로 많이 사용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태양광 발전소의 패널 등 핵심 부품엔 사용되지 않지만 발전 설비의 지지대와 풍력 발전기 기자재 등에 아연 도금 소재가 필수적으로 사용된다는 주장이다.
사진=연합뉴스
인도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제아연협회(IZA)는 지난 5월 철강을 포함한 인프라 부문에 대한 막대한 투자로 인해 인도에서 아연 수요가 향후 5~10년 이내에 두 배로 증가할 것이란 예상을 내놨다. 협회 관계자는 "인도의 1인당 연간 아연 소비량은 약 0.5㎏에 불과해 한국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의 1인당 사용량 6~7㎏에 크게 못 미친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