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가 사과 안 해서' 총선 참패했나 [정치 인사이드]

김건희 명품백 사과에 집착하는 與 전대
"김건희 사과 있었다면 총선 달랐다"지만
"친윤계 해괴한 방어 논리도 혐오 키웠다"
"사과했다고 총선 안 바뀌었을 것" 지적도
사진=뉴스1
"김건희 여사가 명품 수수 논란에 사과했더라면 총선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다"는 말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나왔다. '김 여사가 사과하지 않아서 총선에서 참패했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이유에서 김 여사의 사과 의사가 담긴 문자를 무시했다는, 소위 '읽씹' 논란에 휩싸인 한동훈 당 대표 후보를 향해 책임론도 제기되는 형국이다.

하지만 최근 당 안팎에서는 이러한 패인 분석은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린 '반쪽짜리 오답 노트'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여사가 사과하지 않은 게 총선에 악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지만, 명품 수수 논란 당시 김 여사를 방어하던 일부 인사들의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메시지 역시 당에 치명타였는데도, 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지난 9일 열린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들의 첫 TV 토론회에서 후보들은 정치 현안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O·X' 팻말을 들어 밝혔다. 주어진 질문은 '김 여사가 명품 수수 논란에 사과했다면 총선 결과가 달라졌느냐'였다. 후보들은 사회자가 질문지를 다 읽기도 전에 모두 'O' 팻말을 들었다. "민심에 부응하지 않은 사안"(한동훈), "국민에게 겸허하게 다가가는 전환점"(원희룡), "정말 많이 이기지 않았을까"(나경원) 등 설명도 덧붙였다.
국민의힘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7·23 전당대회가 한동훈 대표 후보의 '김건희 여사 문자 무시' 논란이 돌출하면서 후보 간 비방의 수위가 높아지는 등 요동치고 있다. 사진은 국민의힘 당권주자들. 왼쪽부터 6일 분당 당원조직대회 참석한 한동훈 대표 후보, 6일 원외당협위원장협의회 타운홀미팅 참석한 나경원 대표 후보, 7일 울산광역시당 간담회 참석하 원희룡 대표 후보, 7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 하는 윤상현 대표 후보. / 사진=연합뉴스
토론회 이후 한 여권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TV 토론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 O·X 코너를 언급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김 여사의 사과도 물론 중요했겠지만, 논란 당시 친윤(친윤석열)계라는 분들의 궤변도 한몫했다"면서 "문제를 김 여사의 사과 여부에서만 찾는 것은 50점짜리"라는 지적이다. 이 말에 동석한 다른 관계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친윤 핵심 이철규 의원은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이 한창 불거졌던 지난 1월 "몰카 공작"이라며 "교통사고가 나면 사고를 야기한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 피해자에게 사과하라고 하는 것에 제 개인적인 생각은 다르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호위무사로 불린 이용 전 의원은 당시 국민의힘 전체 의원 단체 대화방에 "사과를 하든 안 하든 지지율은 올라가지 않으며, 사과하는 순간 민주당은 들개들처럼 물어뜯을 것"이라는 보수 유튜버의 발언 요지를 올렸다.이는 현재 친윤계의 김 여사 '사과 불가론'으로 명명돼 비판받고 있다. 이번 전당대회 과정에서 김 여사의 사과가 꼭 필요했다는 데 당의 중론이 모이면서 이같은 친윤계의 사과 불가론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 여사에 대한 국민적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상황에서 김 여사를 보호하려는 분들이 상식과 동떨어진 말들을 하니까 더 짜증이 나서 정권 심판론을 향한 바람이 더 거세졌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8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하와이를 방문한 김건희 여사. / 사진=연합뉴스
다른 국민의힘 의원은 "여당이 대통령실을 향한 비판 여론을 중재하는 역할을 해야 했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다. 도를 넘는 '억지 방어'가 너무 많았다. 이는 국민에 대한 기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은 홍범도 장군 이슈만 하더라도 초반에는 상식적인 이야기가 나오다가 어느 날 입장이 싹 바뀌었다"며 "대통령실의 무리한 주장을 억지 궤변으로 방어하는 게 여당의 역할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런 지적에서 나아가 당시 김 여사의 명품 수수 논란에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 대다수에게 책임이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 비윤(비윤석열)계 인사는 "우리 당은 명품 가방 논란에 국민이 분노하는 것을 다 알면서도 의원총회장에서든 어디서든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다"며 "대놓고 간신 노릇을 한 사람들도 나쁘지만, 공천받고자 아무 말도 안 하고 숨죽인 의원들이 지금 와서 떠들어대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고 했다.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대통령실을 방어하겠다면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해괴한 방어 논리로 얘기했던 분들 때문에 국민들이 '이 집단은 상식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구나',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하면 되지, 왜 변명하고 옹호할까'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라며 "그런 장면들이 모여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에 대한 국민적 혐오가 더 커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 소장은 김 여사가 명품 가방 논란에 사과하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 여당의 결정적인 패인이 아니라고 봤다. 그는 "김 여사가 사과했다고 총선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1월만 하더라도 한동훈 체제가 들어서면서 국민의힘의 총선 전망이 괜찮았었다"며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 황상무 회칼 테러 언급, 윤석열 대통령 대파 사건이 등장하면서 총선 민심이 나빠진 것이다. 김 여사 사과 문제만 놓고 총선 결과가 바뀔 수도 있다는 건 무리한 주장이다"라고 덧붙였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