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가 공영주차장이냐"…노후 아파트 주민들 '분통' [오세성의 헌집만세]

오세성의 헌집만세(11)

차단기 없는 노후 아파트, 외부 차량 단속에 '골치'
"밤마다 주차위반 스티커 붙여도 떼고 다시 들어와"
큰 돈 드는 차단기 설치…주민 동의 얻기 어려워
주차금지 스티커를 떼어낸 자리 옆에 재차 스티커가 붙은 차량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최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노후 아파트에서는 주차 차단기 설치를 놓고 주민 투표가 진행됐습니다. 전체 가구 중 3분의 2 수준인 270여 가구가 찬성해야 차단기를 설치할 수 있지만, 다수 가구가 투표에 불참해 설치 계획이 무산됐습니다. 그나마도 반대가 100표 가까이 나오면서 주차 차단기 설치 논의가 수그러들었습니다.

이 아파트 입주자 백모씨는 "가뜩이나 주차장이 부족한데, 주변 상가나 음식점을 가며 아파트에 차를 대니 정작 주민들이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아침 출근길에 주차하고 저녁이 돼야 나가는 차량도 있었다. 공영주차장이나 마찬가지"라고 토로했습니다.노후 아파트는 일상적으로 주차난을 겪습니다. 아파트를 지을 때부터 주차장을 적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주택건설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주차장 설치 규정을 보면 수도권의 경우 전용 60㎡ 미만은 가구당 0.2대, 전용 85㎡ 미만은 가구당 0.4대의 공간을 마련하도록 했습니다. 작은 집에 사는 사람이 당시 값비싼 사치품인 자동차를 이용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지하 주차장 설치가 의무화된 것도 1991년입니다.
한 아파트 단지 옆 도로에 차량들이 빼곡하게 주차된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하지만 자동차는 빠르게 보급됐습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 누적 등록 대수는 2594만9000대입니다. 국민 2명당 자동차 1대를 보유한 셈입니다. 결과적으로 노후 아파트는 주차난이 일상으로 자리 잡았고, 주민들에게 주차 공간은 매우 민감한 문제가 됐습니다. 노후 아파트에서는 주차장을 늘리고자 배드민턴장이나 테니스장, 아이들 놀이터 등을 없애기도 합니다.

노후 아파트는 이미 주민 차량으로도 주차장이 부족한데, 외부 차량까지 들어오니 저녁마다 '주차 전쟁'이 벌어집니다. 보통 아파트는 차단기가 있어 입주민 등록 차량을 인식하거나 관리실에서 방문 세대를 확인한 후 통과시킵니다.그러나 노후 아파트들은 스티커만 나눠줄 뿐, 차단기가 설치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외부 차량을 막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아파트 주변에 공원이나 주요 상권이 위치했다면 외부 차량이 몰려 주차난이 더욱 심해집니다.
주차 차단기가 없는 노후 아파트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서울의 한 노후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이중주차로 인한 민원이 많아 매일 밤 주차장을 순찰하며 외부 차량을 확인해 주차금지 스티커를 붙인다"면서도 "스티커를 붙여도 다시 들어온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어 "강제로 견인할 수도 없고 잠금장치를 쓰면 이후 소송 우려가 있다"며 "외부 차량 진입을 처음부터 막는 것 외에는 사실상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준공 30년 내외 노후 아파트에서는 주차 차단기 설치를 추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주차 차단기는 장기수선계획 수립 대상에 포함돼 설치하려면 장기수선계획에 반영해야 합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전체 소유자를 대상으로 서면 동의를 받고, 과반수가 찬성해 장기수선계획에 주차 차단기가 포함되면 장기수선충당금으로 설치하는 식입니다.다른 노후 아파트 입주자대표회 관계자는 "소유자 동의를 얻는 일이 쉽지 않다"며 "세를 놓고 나간 소유자의 경우 동의서를 요청해도 회신이 오는 비중은 30% 이하"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비용이 들어가는 사안은 회신을 주더라도 부정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 아파트 단지에 외부 차량 주차를 금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주차 차단기는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차량 번호를 인식하는 차단기 하나를 설치하는데 약 3000만~5000만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입구가 많다면 공사비는 순식간에 억 단위로 불어납니다.

그렇다 보니 직접 거주하는 입주민 사이에서도 주차 차단기 설치를 놓고 의견이 엇갈립니다. 외부 차량을 막아 주차난을 덜어내자는 주장도 있지만, 장기수선충당금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옵니다.공동주택관리 업계 한 관계자는 "입주민 민원을 우려한 대표 회의나 관리주체로 인해 장기수선충당금을 높게 부과하지 못한 아파트가 많다"며 "장충금을 장기수선계획만큼 쌓아두지 못했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노후 배관 교체나 엘리베이터 교체, 주차관제 시스템 도입 등은 주민 실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된 만큼 꾸준한 논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