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푸대접 속 mRNA 연구…인류 구했다
입력
수정
지면A19
돌파의 시간이제껏 가장 빨리 만들어진 백신은 1960년대의 볼거리 백신으로 총 4년이 걸렸다. 2020년 코로나19로 온 세계가 봉쇄됐을 때 그런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그때 세계를 구한 건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이었다. 2020년 1월 코로나19의 염기서열이 밝혀진 뒤 독일 바이온텍은 미국 화이자와 백신 개발에 착수했고, 그해 11월 10일 3단계 임상시험 결과가 발표됐다. 12월 영국에서 첫 mRNA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커털린 커리코 지음 / 조은영 옮김
까치 / 388쪽|1만8000원
작년 노벨상 받은 과학자 회고록
mRNA 연구하려 미국 건너왔지만
대학들은 "시간 낭비"라며 푸대접
교수직 박탈에도 연구 포기 안 해
안전한 mRNA 만드는 방법 찾아
코로나 백신으로 수백만명 구해
<돌파의 시간>은 mRNA 백신을 개발해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한 커털린 커리코(사진)의 회고록이다. 커리코는 영웅으로 떠올랐고 2023년 동료 연구자인 드루 와이스먼과 함께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전까지 그가 받은 것은 ‘mRNA에 미친 여자’라는 소리와 푸대접이 전부였다.
그는 1955년 헝가리에서 태어났다. 가난했다.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흙집에서 자랐다. 배움의 열정은 가득했다. 머리가 좋지 않았지만 학교에서 최선을 다했다. 10대 때 <생명의 스트레스>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오직 자연의 비밀을 향한 소모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저주받은 자만이 그 비밀을 푸는 데 필요한 수많은 실험에 수반되는 엄청난 기술적 문제들을 하나씩 끈질기게 해결하며 평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커리코는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했다.책은 비주류 연구를 하는 이방인 과학자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헝가리에서 연구비가 끊긴 그는 1985년 미국행을 택했다. 헝가리 정부의 외화 반출 규제를 피하기 위해 암시장에서 자동차를 판 종잣돈 900파운드(약 160만원)를 딸의 곰 인형 속에 숨긴 채 비행기에 오른 이야기는 유명하다.
미국 템플대 연구원으로 일하다 존스홉킨스대로 옮기려 했을 땐 “당장 나가! 여기에서 당신을 반겨줄 사람은 없어!”라는 말을 들었다. 템플대 상사였던 생화학자 로버트 수하돌닉은 이민당국에 커리코가 미국에 불법으로 머무르고 있다고 신고했다. 추방 위협이었다. 커리코는 미국 국립군의관 의과대 병리학과 박사후 연구원 자리를 얻어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다.
펜실베이니아대 의대로 옮겼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동물실험 결과 mRNA가 체내에 들어가면 염증 반응을 일으켜 동물이 즉사하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드러나 미국 내 mRNA 연구 열기가 얼어붙은 탓이었다.1995년 학교는 mRNA 연구가 시간 낭비라며 커리코에게 최후통첩을 내렸다. mRNA 연구를 포기하고 정교수가 되는 길을 밟을지, mRNA 연구를 계속하면서 연구원 신분으로 강등될 것인지 물었다. 커리코는 신분 강등과 연봉 삭감을 택했다.
1997년 펜실베이니아대에 새로 부임한 와이스먼 교수를 만난 것이 큰 힘이 됐다. 커리코와 와이스먼 교수는 mRNA를 체내에 주입해도 심각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방법, mRNA가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체내에서 충분히 오래 살아남을 방법을 알아냈다. 2005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2013년 펜실베이니아대에 교수 직위 회복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독일 바이온텍으로 이직했다.
커리코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간단하다. 계속하라는 것. 계속 성장하고, 계속 빛을 향해 나아가라. 당신은 가능성이다. 당신은 씨앗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