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마운트곡스'의 망령

비트코인 급락, NFT·P2E 휘청…
블록체인 생태계 다시 안갯속

돈 쓸어담는 곳은 거래소뿐
제 기능 하고 있는 것 맞나

'숙원' 제도권 편입 이뤄졌으니
투자자보호 책임도 무거워져야

임현우 디지털라이브부 차장
올 4월 1억원을 뚫으면서 파죽지세로 치솟던 비트코인값이 다시 푹 꺾였다. 석 달 사이 20% 빠져 8000만원 언저리다. 혹자는 제롬 파월의 정책, 혹자는 조 바이든의 지지율 같은 거창한 거시적 요인을 말하지만 최근 약세장에는 10년 전 망해버린 한 암호화폐거래소의 ‘망령’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름은 마운트곡스(Mt. Gox). 한때 세계 비트코인 매매의 70%를 장악한 글로벌 1등 거래소였다. 그러나 해커에게 코인 85만 개를 털리는 바람에 2014년 파산 선고를 받았다.

폐업은 순식간이었어도 빚잔치는 지난했다. 마운트곡스는 파산 신청 이후 뒤늦게 비트코인 20만 개를 회수했는데, 이걸 예전 이용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지급 방식을 놓고 갈팡질팡하다가 지난 5일 첫 상환이 이뤄졌다. 오는 10월까지 2만 명이 순차적으로 비트코인을 반환받게 된다.그런데 당시 600달러 하던 비트코인, 지금 6만달러다. 시장에 최대 12조원 규모의 잠재적 매도 폭탄이 쌓인 것이다. 코인을 되찾은 이들이 한꺼번에 현금화에 나서면 일대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망할 때도 큰 충격을 줬던 ‘마운트곡스 리스크’는 10년이 지나 또 시장을 흔들고 있다.
암호화폐거래소라는 비즈니스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10년이다. 그해 4월 설립된 비트코인마켓은 ‘세계 최초 암호화폐거래소’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고, 석 달 뒤인 7월 마운트곡스가 문을 열었다. 비트코인은 투명성, 보안 등에서 장점이 있다고 해도 비전문가가 코인을 개인 지갑에 직접 보관하고 전송, 관리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블록체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 이런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 거래소는 암호화폐 생태계의 여러 영역 중 일부일 뿐이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서비스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돕고, 검증된 프로젝트를 투자자에게 소개하는 가교 역할을 하라고 존재하는 곳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꿀 것”이라던 블록체인들, 아직도 별다른 성과가 없다.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는 줄줄이 지급 불능에 빠졌고, 대체불가능토큰(NFT)은 자전거래로 부풀린 거품이 터져버렸다. P2E(play to earn·돈 버는 게임)는 코인값이 떨어지면 게임까지 동반 몰락하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거래소만 돈을 버는 유일한 업종이 돼 버렸다.현재 지구상에는 최소 790개 이상의 암호화폐거래소가 운영되고 있다. 비트코인마켓과 마운트곡스를 비롯한 1세대는 상당수가 몰락했다. 해킹을 당했거나, 법을 어겼거나, 전략을 잘못 짰거나, 기구한 사연이 많다. 빈자리는 2017~2018년께 설립된 후발주자들이 채웠다. 세계 1위 바이낸스와 국내 1위 업비트 등이 대표적이다.

2세대 거래소들은 인터페이스가 편리해지고 보안이 강해진 것 말고도 상품 구색을 한층 다양화한 게 특징이다. 어찌 보면 사람의 투기적 성향을 집요하게 공략한 업체일수록 잘됐다. 바이낸스는 ‘없는 코인이 없는’ 백화점식 상장의 대명사다. 한국에서 금지됐을 뿐 해외 대형 거래소에는 125배 레버리지 같은 초고위험 파생상품이 난무한다. 업비트 역시 삽시간에 선두를 굳힌 계기는 ‘국내 최다 종목 상장’이었다. 결국 국내 다른 거래소들도 체면 다 버리고 백화점식 상장에 합류해 손님몰이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투자는 개인 책임이라지만, 거래소 본연의 기능을 다했다고 볼 수 있을까.

국내에서 이달 19일부터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된다. 거래소들은 ‘이용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캠페인 광고를 쏟아내며 이미지 관리에 한창이다. 이용자 예치금에 이자를 주도록 하고, 시세조종 처벌이 강화되는 등 긍정적 변화들이 있다. 또 업체가 파산하더라도 예치금 지급을 보장한다고 한다. 적어도 보상에 10년이 걸리는 마운트곡스 같은 일은 없어질 듯싶다. 다만 뜬구름 잡는 듯한 코인 프로젝트들을 이것저것 늘어놓고 투기적 욕망을 자극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쉽게 달라질까. 아직은 물음표가 남는다. 몇 년 동안 거래소끼리 모여 ‘상장 자율 규제’ 같은 것도 했다지만 점유율 경쟁 앞에선 아무 소용 없었다. 기왕 가상자산을 제도권에 편입하기로 한 이상 상장과 상장폐지, 공시, 발행 등에 대한 규제도 좀 더 세게 추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