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독이 든 성배’ 든 홍명보 [서재원의 축구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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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A대표팀 감독 복귀5개월이나 질질 끌었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 선임 작업이 마무리됐다. 오래 기다린 팬들의 기대와 달리 대한축구협회의 발표는 한국 축구계를 뒤흔들 만큼 충격적이었다. 설마설마했던 홍명보(55)라는 이름이 다시 등장하면서다.
브라질월드컵 실패로 역적 낙인
히딩크부터 클린스만까지 13人
평균 재임 기간 19개월 불과
벤투도 본선 직전까지 비판 여론
여론 바꿀 방법은 본선 결과뿐
협회는 지난 7일 홍명보 감독을 차기 대표팀 사령탑으로 내정했다고 밝혔다. 홍 감독이 A대표팀 지휘봉을 잡는 건 10년 만이다. 2014 브라질월드컵을 1년 앞두고 소방수로 투입돼 지휘봉을 잡았던 그는 월드컵 본선에서 1무 2패라는 초라한 성적 끝에 탈락한 뒤 쓸쓸히 물러났다.
◆10년 전에도 응원받지 못했던 감독
홍 감독은 축구대표팀 감독직이 ‘독이 든 성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국민적 영웅으로 평가됐던 그는 브라질월드컵에서 실패한 뒤 한국 축구의 ‘역적’으로 낙인찍혔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이끌었던 성과도 국민들과 축구팬의 기억에서 한순간에 사라졌다.사실 홍명보 감독은 브라질월드컵 전부터 응원받지 못했다. 최종 명단 발표 때부터 ‘의리 축구’ 논란에 휩싸이면서다. 홍 감독은 일명 ‘홍명보의 아이들’로 불렸던 2009년 20세 이하(U-20) 월드컵과 2012년 런던올림픽 대표 출신들을 대거 발탁했다. 특히 ‘소속팀에서의 활약’이 우선이라는 스스로 정한 원칙까지 깨며 당시 아스널(잉글랜드)에서 벤치 신세를 면하지 못하던 박주영을 선발해 비판을 받았다.응원받지 못한 홍명보호의 결말은 참혹했다. ‘원팀’을 강조했지만 정작 팬심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던 홍 감독은 여론의 뭇매를 맞은 뒤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당시 협회는 월드컵 실패에도 2015년 1월 아시안컵까지 홍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기로 결정한 바 있다.
◆성공한 감독은 극히 일부
10년 전 홍 감독처럼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감독직에서 내려온 감독은 한둘이 아니다. 한일월드컵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부터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까지 13명의 평균 재임 기간은 19개월에 불과했다. 성공한 외국인 지도자도 히딩크 감독과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감독 정도가 전부다. 히딩크 감독 이후 2003년 취임한 움베르투 코엘류(포르투갈) 감독은 14개월, 이어 부임한 요하네스 본프레러(네덜란드) 감독도 14개월 만에 경질됐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이끌었던 딕 아드보카트(네덜란드) 감독의 임기도 8개월, 히딩크 사단이었던 고(故) 핌 베어벡(네덜란드) 감독도 13개월 만에 한국을 떠났다.그나마 2014년 말 부임한 울리 슈틸리케(독일) 감독이 33개월간 A대표팀을 이끌며 벤투 감독 전까지 ‘최장수 사령탑’의 타이틀을 달았지만,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도중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됐다.
◆벤투도 초반엔 환영 못 받아...결국 성적이 중요
러시아월드컵 직후인 2018년 8월부터 4년 넘게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벤투 감독도 부임 기간 내내 환영받지 못했다. 벤투 감독이 강조한 ‘빌드업 축구’는 그의 고집으로 치부됐고, 손흥민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플랜B의 부재는 월드컵 예선 내내 그를 흔들었다. 게다가 본선 직전까지 이강인에 대한 외면으로 서울월드컵경기장을 가득 메운 5만9000여 관중의 야유를 받기도 했다.그러나 본선에서의 성공적인 결과는 여론을 180도 뒤집었다. 한국은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포르투갈을 2대1로 꺾는 이변을 일으키며 16강에 진출했다. 한때 고집이라 불리던 벤투 감독은 뚝심 있는 리더십으로 재평가됐고, 한국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명장으로 거듭났다.
홍 감독 선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월드컵 본선 때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또 독이 든 성배를 들고만 홍 감독이 지금의 여론을 뒤집을 방법은 2년 뒤 2026 북중미월드컵에서 16강 진출 이상의 결과를 만드는 것밖에는 없어 보인다. 한 축구인도 "이렇게까지 환영받지 못한 대표팀 감독이 또 있을까 싶다"며 "북중미월드컵의 결과로 그의 커리어가 끝날지, 계속 이어질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