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가수 연광철 "바그너의 매력이요? 지루하다"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기획공연 오른다
접하기 힘든 베이스 아리아 만나보세요
"바그너 오페라의 매력이요? 지루하다."
독일의 이름난 지휘자들(다니엘 바렌보임, 크리스티안 틸레만, 키릴 페트렌코 등)에게 섭외 '0순위'인 오페라 가수 연광철이 돌직구를 던졌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좌중에게 웃음을 선사한 베테랑 가수는 베이스 특유의 음색으로 말을 이어나갔다."이탈리아 푸치니의 오페라는 하이라이트로 향하는 주제가 분명해 관객의 몰입이 쉽죠. 하지만 바그너의 음악은 서사가 많고 극의 맺고 끊음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공연 시간도 길어서 바쁜 일상에 쫓기다가 감상할 수 있는 쉬운 작품이 아닙니다." 바그너의 음악 안에는 수만가지 주제들이 한 이야기 안에서 경합해 관객들의 사전 공부가 필수다. 이어 기자들에게 반문했다. "그런 연유로 바그너의 오페라가 한국 무대에 오르기란 어려워요. 기억하시는 아리아가 있나요?"

연광철이 기자들과 오랜만에 마주한 것은, 오는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기획공연 '보컬 마스터 시리즈'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공연 1부에서 모차르트와 베르디, 2부에서는 바그너오페라의 하이라이트(탄호이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중)를 부른다. 바그너 음악은 그의 주특기다.

▶▶▶(관련 기사) 연광철·사무엘 윤·홍혜경… 세계적 성악가 3인방 '특별한 리사이틀'인터넷도 없던 1993년. 세계적 성악 경연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에서 연광철은 우승했다. 유럽에서 변방으로 여겨지던 한국의 가수가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은 성악 종주국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이후 연광철은 독일의 주요 극장에서 베이스로서 맡을 수 있는 모든 묵직한 역할을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 독일에 근거지를 두면서 자연스레 독일 오페라 무대에 오른 결과다. 뜨거운 열정으로 폭발하는 오페라보다는 보다 사색적이고 통찰을 요구하는 작품에 출연할 수 있는 환경이어서 본인에게도 더 잘 맞았다. 바그너를 기리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1996년 데뷔한 이래 이 축제에서만 150여회가 넘는 무대에 섰다.
"가장 낮은 음역대의 베이스에 주어지는 역할은 주로 신, 왕, 근엄한 아버지 등 묵직한 존재가 많아요. 응원도 있었지만 동양인이 독일 왕을? 이라며 색안경끼고 보는 시선도 있었어요. 독일인보다 더 독일인답게 부르지 않으면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에 혼신의 힘을 다 했어요."

그가 말하는 혼신의 힘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완벽한 독일어 구사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바그너를 다룬 논문을 읽고, 그 당시 독일 사회와 문화에 젖어들게끔 몸과 마음을 모두 거기에 두었다. "한국 차세대 성악가들이 해외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두각을 나타내는 시대죠. 하지만 가끔은 몸만 거기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에서처럼 메신저를 하고, 한국인처럼 살아요. 그런점이 좀 안타까워요." 그에게 노래는 경험이 묻어나오는 예술이다. 성악가에게는 철저히 그 사회와 문화의 일원이 돼야만 이룰 수 있는 어떤 경지가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연광철의 한국 무대는 흔치 않다. 유럽에서 활동하면서 2~3년치 스케줄이 미리 잡혀있어서다. 오늘은 서울에서 노래를 부르다 내일은 샌프란시스코 무대에 선다. 그 다음날은 베를린, 비엔나. 그는 아예 10년 캘린더를 쓴다. 그러다보니 급박하게 콘서트 일정을 잡고 연락해오는 한국 공연계와 연이 닿기란 쉽지 않다. 연광철은 "테너처럼 쏘아올리는 '한 방'이 없는 베이스가 오케스트라와 꾸밀 수 있는 무대는 많지 않다"며 "관객 분들이 이번 공연의 희소성과 가치에 의미를 부여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