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둔해진 성장세…기로에 선 전기차

캐즘
파산 신청한 미국 피스커가 작년 8월 공개한 저가형 전기차 ‘피어’. /한경DB
한때 ‘제2의 테슬라’로 불리던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흔들리고 있다. 피스커는 지난달 17일 파산을 신청했고, 니콜라는 주가가 너무 떨어져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폴스타는 올 초 세계 인력의 15%를 감원하기도 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투자금을 쓸어 담던 기업들이 줄줄이 된서리를 맞고 있는 것이다. 리비안은 지난달 25일 독일 폭스바겐으로부터 50억달러(약 7조원) 투자를 유치하며 기사회생의 계기를 만들었다. 전기차 시장이 캐즘(chasm)을 맞으면서 치열한 ‘옥석 가리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짝 뜨고 끝? 본격적인 대중화?

캐즘이란 신기술이 보급되는 과정에서 수요가 일시적으로 정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원래 지각변동으로 생긴 단절을 뜻하는 지질학 용어였지만 산업계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 초창기에는 혁신적인 것에 열광하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 수요에 힘입어 가파르게 성장하고도 일반 대중에게 널리 확산되는 데는 실패한 사례가 적지 않다.최근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는 눈에 띄게 둔해졌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1~4월 중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에 등록된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포함)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0.4% 늘어난 177만5000대로 집계됐다. 계속 증가하곤 있지만 지난해(35.4%)에 비해 속도가 뚝 떨어졌다. 2017년 이후 연평균 증가율(45.0%)과 비교해도 격차가 크다.

전기차 1위 업체 테슬라의 판매량은 12.8% 감소한 32만 대에 그쳤다. 내연기관차에 집중해온 대형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차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려던 계획을 수정했다. 포드는 캐나다 공장의 전기차 양산 시점을 2025년에서 2027년으로 2년 늦췄다. 제너럴모터스(GM)는 전기트럭 공장 신설 계획을 1년 연기했다.

전문가들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에는 아직 비싼 가격, 부족한 충전 인프라, 여전히 높은 금리 등을 전기차 수요 둔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SNE리서치는 “얼리 어답터의 전기차 초기 수요가 채워진 이후 대중들이 가격과 편의성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각국 정부가 지급해온 보조금이 잇따라 축소됐고, 고금리 탓에 할부금융을 이용하는 비용도 높아지면서 전기차 구매자가 느끼는 가격 부담은 무거워졌다. “충전이 불편하다” “안전성이 불안하다”는 인식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배터리 산업에 불똥 … “위기론 과하다” 지적도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자동차 업계가 전기차 생산을 줄이면서 배터리 업계도 동반 타격을 받고 있다. 2021년 107%에 달하던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성장률은 2022년 69.3%, 2023년 38.8% 등으로 하락했다. 다만 전기차 시장이 인공지능(AI) 산업과 비슷한 두 자릿수 성장률을 이어가는 점 등에 비춰 ‘캐즘 위기론’은 과하다는 반론도 있다. 차량의 전동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점이 근거다. 긴 호흡을 갖고 대중화에 따른 폭발적 성장과 패권전쟁에 적극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