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원론 산책] 통화정책 중간목표 설정 안 하고 물가안정에 최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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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S8
(102) 물가안정목표제통화정책은 고용이나 물가 또는 수출입 등의 변동이 심해 국민들이 경제 불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경제 안정화를 최종 목표로 중앙은행이 시행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데까지 걸리는 경로가 길기 때문에 최종 목표 달성을 위해 정책이 잘 작동되는지를 점검하고자 중앙은행이 이자율이나 통화량 같은 중간목표를 설정해놓고 통화정책의 효과를 점검하고 있다는 점을 지난주에 설명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중간목표를 설정해놓던 통화정책의 운영 방식에 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통화정책을 시행하면서 이자율이나 통화량과 같은 중간목표를 아예 설정해두지 않고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 방식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국가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도입과 의미
물가안정목표제는 1990년 뉴질랜드에서 처음 도입했으며, 이후 캐나다·영국·스웨덴 등이 연이어 이 제도를 채택해 1998년 기준으로 91개 국가의 중앙은행 중 54개 중앙은행이 물가안정목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98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해 중간목표 없이 물가안정만을 목표로 통화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물가안정목표제는 통화정책을 운용하면서 이자율이나 통화량과 같은 중간목표를 생략하고 물가상승률만을 통화정책의 유일한 목표로 채택하는 제도다. 다시 말해 통화정책의 또 다른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고용이나 국제 거래 등의 안정보다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정하고 물가안정 이외의 다른 최종 목표는 물가안정을 이룬 이후에 추구한다는 방식으로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것이다.도입 이유
많은 국가가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한 이유는 통화정책이 물가안정 이외에 고용안정 등과 같은 다양한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물가와 고용이 동시에 불안한 상황에서 통화정책이 장기적으로 고용안정을 통해 GDP 증가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물가만 올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면서 우선 한 가지 목표라도 확실하게 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 물가안정목표제를 채택한 것이다. 물가안정목표제는 중앙은행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물가안정이라는 점을 통해 국가가 물가안정을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려 물가가 상승하지 않으리라는 기대심리를 국민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것도 많은 나라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운영 방식
물가안정목표제는 국가마다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물가수준 자체를 목표로 삼아 정책을 운영하는 국가도 있고, 물가상승률을 목표로 정한 국가도 있다. 물가상승률을 정한 국가에서도 하나의 물가상승률만을 목표로 정하기도 하고, 일정한 범위의 물가상승률을 목표로 정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물가지수에 기초해 물가상승률 목표를 설정하는지와 관련해서도 차이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가격 변동성이 큰 농산물과 석유류 가격 등을 제외한 소비자물가지수인 근원인플레이션(core inflation)에 기초해 정책을 운영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물가안정목표제가 실제로 물가안정에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중앙은행이 행정부나 국회에 간섭을 받으면 물가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추구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된다. 중앙은행이 독립성이 보장된다고 해도 중앙은행의 물가 예측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면 역시 물가안정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중앙은행은 물가 예측 능력을 높이기 위해 많은 경제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