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의 종횡무진 경제사] 로마, 광대한 영토 관리에 어려움…'한계수익' 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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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S18
(42) 왕국은 어떻게 무너지나로마가 아직 ‘꼬마’였을 때(기원전 700년 무렵) 주변에 강적이 둘 있었다. 하나는 머리 위 북쪽의 에트루리아, 다른 하나는 로마의 동쪽에 있던 산악 민족 삼니움이다. 에트루리아는 금속 세공과 무역을 재정의 기본 베이스로 건축과 조각이 발달한 문명국이었고, 로마는 목축과 농사로 먹고사는 촌이었다. 우리로 치면 서울 강남과 1960년대 농촌 정도의 차이랄까? 당연히 로마는 에트루리아의 ‘밥’이었다. 심지어 로마 왕정 244년 중 100여 년은 아예 에트루리아인이 왕으로 다스렸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에트루리아 강점기’쯤 되겠다. 리비우스의 <로마사> 142권 중 로마 왕정 시대가 겨우 한 권인 이유로 로마는 과거 이민족 왕조의 통치 기억이 짜증났을 것이다. 로마가 중학생 정도의 체력이 되었을 때 에트루리아가 지도에서 사라진다. 기원전 264년의 일로 에트루리아의 대표적 도시 벨즈나가 로마의 공격에 무너진 것이다. 그 사이 로마의 기량이 쑥쑥 자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에트루리아의 종말을 설명하기 어렵다. 군사적으로도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던 에트루리아 멸망의 이유는 이들이 중앙집권이 아닌 도시국가 연합 체제였기 때문이다. 12개 국가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로마는 이들을 하나씩 야금야금 분쇄해나간 것이다.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 "로마의 몰락은
무절제하던 위대함의 필연적 결과"
유대왕국, 거대한 성전 짓다 재정 '빨간불'
세금 늘리고 이민족에 영토 팔다 민심 이반
고대에는 중앙집권 국가가 들어서는 것이 선진화였다. 거기에 더해 만약 이 국가의 왕위가 혈통에게 세습되면 초일류 국가. 우리 역사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이 의미 있고 중요한 이유도 그래서다. 외세를 끌어들여 같은 민족을 치고 영토를 까먹은 일을 탓하는 것은 요새 관점이다. 지난 호에 이어 유대인 얘기를 해보자(안 읽었어도 상관없다). 아브라함의 3대 손 야곱의 아들이 12명이다. 이들은 나중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 된다. 유대 12지파 동맹 체제의 조정자가 판관이다. 제일 유명한 판관은 삼손이며, 그는 인간에게 머리카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 인물이다. 당시 동맹 체제의 가장 큰 위협은 삼손의 머리카락을 자른 필리스티아인들이었다. 유대인들은 새로운 정치체제를 고민한다. 결론은 강력한 중앙집권 정치체제를 갖춘 왕정(王政)의 도입이었다. 그렇게 선출된 1대 왕이 사울이고, 2대 왕이 다윗이다. 당연히 효과가 있었다. 왕정으로 맞서지 않았더라면 유대 동맹은 아마 에트루리아의 멸망을 재현했을 것이다. 3대 왕이 솔로몬인데, 이 시기가 유대왕국의 절정기다. 거대한 성전을 짓고 화려한 왕궁을 신축했다. 왕국 재정에 빨간불이 들어온다. 솔로몬은 긴축재정 대신 세금을 늘리는 악수(惡手)를 둔다. 심지어 이민족에게 영토까지 팔았다. 민심이 이반하면서 국력 쇠약이 눈에 보이자 주변 강대국은 침을 흘리기 시작했고, 내부에서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한다. 결국 왕국은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 둘로 쪼개지고,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멸망한다. 아시리아는 북이스라엘을 짓밟은 후 엘리트는 잡아가고 그 땅에 아라비아인을 데려다 심었다. 이민족과 피가 섞이자 이때부터 남쪽 유다 사람들은 이들을 같은 유대 민족으로 보지 않기 시작한다. 멸칭으로 이들을 ‘사마리아인’이라고 불렀는데,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사마리아였기 때문이다.130년 후 남유다도 바빌로니아에 의해 같은 꼴이 난다(이전에 같은 혈통, 같은 이름의 왕국이 있어 신(新)바빌로니아라고도 한다). 남유다 지도층 역시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는데 기원전 538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영원할 것 같던 바빌로니아의 위세가 페르시아라는 신흥 강국에 무너지고 바빌로니아를 접수한 페르시아 왕 키루스가 유대인 해방을 전격 선언한 것이다. 물론 총독 파견이라는 단서 조항이 붙긴 했지만.
귀향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다. 쉽지 않았다. 재건 비용을 대주기로 한 키루스 왕이 차일피일 약속을 미루는 가운데 사마리아인과의 갈등이 격화됐다. 무지렁이라는 이유로 끌려가지 않던 토착 유대인과의 사이도 별로였다. 토착 유대인들은 갑자기 돌아와 주인 행세를 하려는 ‘잘난 것’들이 달갑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성전을 다시 지었지만 기가 찬 일이 또 벌어진다. 영원불변할 것 같던 대페르시아 제국을 알렉산더의 그리스인들이 해체해버린 것이다. 페르시아는 유대인의 후견인이었으며 친구였다. 친구의 자리를 대신한 그리스인들은 이들의 유일신 신앙을 간섭하기 시작한다. 그리스인들의 지배는 길지 않았다. 그 자리는 다시 로마에 넘어간다.
로마로 시작했으니 로마로 이야기를 맺자. 로마는 왜 멸망했을까. 산림을 파괴해서, 납중독 때문에 혹은 바지를 입지 않아서 같은 건 그나마 신선하다. 혼탁한 목욕탕 문화와 성적 타락은 식상의 절정으로 말하는 사람을 바보처럼 보이게 하니 주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이렇게 말했다. “로마의 몰락은 무절제하던 위대함의 필연적 결과다. 시간 혹은 우연이 부자연스러운 지지를 거두는 순간 거대한 조직체는 자신의 무게에 굴복하고 만다.” 로마는 망할 때가 돼서 망한 것뿐이다. 경제용어로 한계수익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정복 전쟁으로 영토는 넓어졌지만 관리는 어려웠다. 그래서 제국을 동, 서 둘로 쪼개고 버텨봤지만 서쪽 로마라는 한쪽 날개가 결국 무너진 것이다. 그냥 그게 다다. 인간이 창조한 것 중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