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품에 담은 인간의 희구: 당신 무엇을 바라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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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홍지수의 공예 완상나는 미술관만큼이나 박물관을 좋아한다. 평소에는 동시대 미술의 화려하고 신박한 표현들, 첨예한 이슈에 민감하게 나의 촉수를 세우며 살지만, 박물관을 찾아 오래된 유물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작가 강준영의 작업으로 보는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희구한 꿈
대부분 세월 긴 것은 수천 년, 짧은 것은 수백 년도 더 된, 그야말로 ‘세월 묵은 것’이다. 최초 어느 솜씨 좋은 공장(工匠)의 손을 떠나 여러 사용자의 손을 거치며 살아남은 생명력 질긴 것들이다. 지금은 유리 전시관 안에 있지만, 과거에는 누군가가 사용하고 애정하던 것들이다. 따라서 사물의 형태 그리고 피부에는 사용자의 다양한 삶과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당초 제빛과 색채를 잃었어도 오히려 세월 머금은 고매한 사물의 멋, 질감, 색채는 아무리 잘 만든 새것이라도 결코 범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박물관 속 유물이 매력적인 것은 오랜 세월감과 요즘 기술로도 쉽게 재현하기 어려운 공력 때문만은 아니다. 아름답고 높은 가치를 지닌 유물이어서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삶과 문화를 이해하는 소중한 자료다. 유물을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시간 여행하는 것 같다. 당시 사람들이 살았을 풍경이 통시적으로 그려진다. 시대별로 사람들이 어떤 것을 희구하고, 어떤 삶을 살고자 했었는지 읽는 재미가 있다. 과거에서 현재를 반추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박물관에 가는 이유다.
불상, 불화 같은 종교 및 제례용 물품이나 금관, 금속기 등도 뛰어난 세공과 공력이 참으로 격조 있고 멋있다. 그러나 나는 항아리, 밥그릇, 국대접, 접시, 주전자, 술병, 술잔, 찻사발, 저장 용기 등 옛사람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했던 유물을 볼 때, 한국인이 추구했던 미의식이 더욱 오롯이 느껴진다. 나는 박물관에서 도자기나 규방공예, 민화(民話) 등을 볼 때, 옛사람들이 살았던 삶과 희구했던 꿈이 지금 우리의 것과 다르지 않다는 데 동질감과 위안을 얻는다. 옛 도자기, 규방공예, 민화 중에는 유독 목단(牧丹)무늬가 많다. 매해 곡우(穀雨)경 핀다고 곡우화(穀雨花)라고도 불리며, 크고 복스러운 형태 때문에 꽃 중의 꽃, 화왕(花王)이라고도 한다. 여러 겹 꽃잎이 감싸 안에 숨겨 놓은 노란 수술 더미가 황금동전같아 왜 옛사람들이 여러 꽃을 두고 모란에 부귀영화의 의미를 부여했는지 익히 납득이 간다.동서고금 꽃은 미인을 상징하니, 새와 함께 꽃을 그리거나 자수 놓으면, 혼례의 길함과 부부 화합을 의미하는 도안이 완성된다. 궁중이나 여염 아낙이나 신분 가릴 것 없이 누구나 모란을 한땀 한땀 붉은 실을 꿰어 긴 시간 수 놓으며, 모란이 그려진 그림이나 공예품을 집안 곳곳에 두고 사용하며 모란무늬와 눈 마주칠 때마다 얼마나 자주 도상의 길상 의미를 되새기고 실현되기를 염원하지 않았겠나.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 자손이 끊이지 않고 번성하기를 바라는 자손만대(子孫萬代)의 바램도 지금 우리의 희구와 다르지 않다. 포도는 한 가지에 많은 열매를 맺는 식물이어서 풍요를 상징한다. 넝쿨을 뜻하는 만대(蔓帶)는 자손만대(萬代)와 뜻을 같게 여겼고 주렁주렁 달린 열매는 다산(多産)을 상징했다. 옛사람들은 포도를 그린 그림, 공예품을 집에 두면 가문이 번창하고 자손이 번성한다고 생각했다.
승진, 합격, 출세를 염원하는 마음도 지금과 매한가지다. 물고기는 다산, 부부화합을 의미한다. 그러나 물고기가 몸을 U자형으로 굽혀 수면 위를 튀어 오르면, 어변성룡(魚變成龍)으로 입신양명과 등용을 의미한다. 하늘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 낚시에 걸린 물고기, 어항 속의 물고기 등도 ‘선택된 물고기’ 즉, 등용의 형상이다. 작가 강준영은 도예와 페인팅, 드로잉, 미디어 그리고 힙합까지 다양한 매체를 섭렵한다. 도자기를 전공했고 빚는다 하면, 작업이 정적이고 장인(匠人)정신에 입각한 작가 이미지를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디제잉하고 롱보드를 타며, 아트토이와 한정판 운동화를 수집하며, 최신 팝과 스트리트 문화, 패션에 민감한 전형적인 MZ키즈다. 그래피티를 연상시키는 그의 도자기나 드로잉, 설치작업이 요즘 말로‘힙(Hip)’하다. 강준영의 작업은 ‘가족’이다. 화려함과 톡톡 튀는 감성에 반해 주제가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다. 작가는 일찍이 해외 유학하며 가족과 멀리 떨어져 지냈다. 방학에 들어오면 할머니는 멀리 떨어져 사는 손자가 애로워 볼 때마다 따뜻이 품어주셨다. 아버지는 건축가였다. 그를 통해 현대미술에 눈을 떴다. 그가 가족의 중심이었다면, 작고 후에는 작가가 가장이 되었고, 이후 결혼하며 아내와 아이라는 새로운 가족들이 생겼다.
그는 여느 대한민국의 7080세대처럼 세대와 세대의 중간에서 때로 아버지의 아들로, 어린 아들의 아버지로/ 어머니의 아들로, 아내의 남편으로 가족 간 다양한 관계 속에서 복잡다단 감정을 겪으며 자기 역할을 해나간다. 자신 그리고 가장으로서 가족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며 매일 일기를 쓰듯 캔버스 위에, 도자기 표면에 바램과 긍정의 캐치프레이즈를 쓰고 기도한다.그에게 ‘집’은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잇는 주요한 모티브이면서 가족을 아우르는 상징적 공간이다. 집(Home)은 가족의 위안과 안식을 위한 테두리이면서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상충되는 감정과 충돌을 고스란히 담는 또 하나의 그릇이다. 그것은 작가의 개인적 공간이지만, 작품이 타인의 소유로 그들의 공간에 걸리면, 소장자는 그것을 오고 가며 볼 때마다 ‘집’, 가족, 사랑을 다시금 상기하게 될 것이다. 마치 옛사람들이 부귀영화(富貴榮華)를 상징하는 무늬를 민화, 도자기, 의복, 규방공예에 그리고 시시때때로 볼 때마다 기복하며 성취되길 바라마지 않았던 것처럼.
강준영이 항아리, 말풍선, 집의 테두리를 말풍선 삼아 쓴 문구들. ‘사랑해(I love you…)’/‘나는 너를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어(I was born to love you)’/‘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네요…’/‘넌 날 웃게 해(You make me smile)’/‘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워! (You are more beautiful than you think!)’등이 나의 눈에는 옛사람들이 그림과 도자기에 그린 모란, 포도, 물고기, 새, 꽃무늬와 똑같다. 박물관 곳곳에서 발견한 기복과 행복에의 추구 그리고 요즘 강준영의 것을 보며 결국 사람 사는 일, 바라는 것이 시절, 세대 달라졌다고 하나 그것이 다른 건가 싶다.홍지수 공예평론가·미술학박사·CraftMIX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