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에 밀려 드라마·영화 제작 급감…유료방송 매출 10년來 최악

유튜브·OTT 공세에…IPTV·케이블 등 유료방송 위기

VOD 가입자당매출 역대 최저
해지 전 단계 '코드셰이빙' 가속
'돈줄' 홈쇼핑 영업익 2000억 뚝

넷플릭스·유튜브 진격에 대위기
韓기업과 달리 규제 적용 안받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40시간. 올해 1월 기준 한국인 한 명의 월평균 유튜브 이용 시간이다. 세계를 통틀어 가장 긴 수준으로, 글로벌 평균 이용 시간(23시간)의 1.7배다. 2019년 21시간에서 5년 새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넷플릭스 국내 이용자는 2019년 286만 명에서 지난해 1164만 명으로 세 배 넘게 뛰었다. 이렇게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국내 시장 지배력이 커지는 동안 국내 미디어산업은 뒷걸음질했다.

핵심 수익지표 와르르

14일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인터넷TV(IPTV)와 종합유선방송(케이블TV·SO) 등 유료 방송의 2022년 주문형 비디오(VOD) 가입자당평균매출(ARPU)은 1845원으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2016~2018년만 해도 2900원대를 유지하던 ARPU는 2019년부터 눈에 띄게 줄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국내 서비스를 본격 확장한 때부터 성장세가 꺾였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LG헬로비전 SK브로드밴드 등 종합유선방송의 2022년 VOD ARPU는 984원까지 떨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핵심 수익지표인 VOD ARPU가 1000원을 넘기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가입자가 늘지 않는데 이대로 사업을 이어가도 되겠냐는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초 발표하는 자료에 담길 지난해 상황은 이보다 더 나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와 업계에선 VOD 매출이 급격히 줄어든 것을 유료 방송을 해지하는 ‘코드커팅’의 전조로 보고 있다.
TV홈쇼핑에 적신호가 켜진 것도 유료 방송사업엔 치명타다. TV홈쇼핑은 해마다 유료방송사업자에 상당액의 송출 수수료를 낸다. 유료 방송 수익 기반의 약 33%가 TV홈쇼핑 송출 수수료에서 나온다. 지난해 TV홈쇼핑이 유료방송사업자에 낸 송출 수수료는 1조9375억원에 달한다.

이를 두고 TV홈쇼핑에선 볼멘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TV 시청자가 나날이 감소해 영업이익은 역대 최저 수준인데, 유료방송사업자에 내는 송출 수수료가 과도하다는 목소리다. TV홈쇼핑의 영업이익은 2022년 7147억원에서 지난해 4430억원으로 38% 줄었다.

‘무혈입성’ 넷플릭스의 진격

업계에선 ‘5대 위기 징후’를 거론하고 있다. 코드커팅이 첫 손에 꼽히고, TV홈쇼핑 영업이익 감소가 두 번째 징후로 지목된다. 지상파, CJ ENM 등 주요 방송사가 경영 위기로 구조조정에 나선 것도 세 번째 위기 징후다. 네 번째로는 드라마 제작 편수가 2022년 135편에서 지난해 125편, 올해 100편으로 줄어든 점이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4대 국제영화제 출품작이 한 편도 없는 것이 다섯 번째 위기 징후로 여겨진다. 영화 제작 및 배급 환경이 그만큼 나빠진 것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상영하지 못하고 창고에 쌓인 영화만 100여 편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콘텐츠 생산 생태계가 망가진 배경에도 넷플릭스가 있다. 넷플릭스가 막대한 투자비로 A급 배우, 생산 인력 등을 독점하면서 국내 콘텐츠미디어산업 생태계가 황폐해졌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선 애초부터 넷플릭스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넷플릭스는 정부가 해마다 시행하는 경쟁상황평가 조사 대상이 아니다. 콘텐츠 투자와 관련한 규제를 받지 않는다. 국내 사업자가 콘텐츠 투자를 확대하려 할 때마다 정부 규제에 번번이 발목을 잡힌 상황과 대비된다. SK브로드밴드는 2016년 CJ헬로비전을 합병하면서 3000억원 펀드를 조성해 콘텐츠 투자를 확대하려 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불허로 무산됐다. 2018년에는 KT가 딜라이브를 합병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겠다고 나섰지만 유료방송 전체 점유율 33.3% 제한에 막혔다.이 밖에 요금과 약관, 채널 편성, 광고, 내용 심의 등 국내 미디어산업에 적용되는 주요 규제에서 넷플릭스와 유튜브는 빠져 있다. 이 두 업체는 유료 방송, 방송사, 홈쇼핑 등이 해마다 내는 방송통신발전기금 징수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