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상무기가 된 개들과 탈출 꿈꾸는 이선균, 결국 울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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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지난 11일 개봉한 한국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김태곤 감독)는 오랜만에 공개되는 재난영화다. 그럼에도 블록버스터가 주는 기대와 설렘만 가지고 이 영화를 마주할 순 없는 것은, 이 작품이 고(故)이선균 배우의 유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작년 칸영화제의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되어 해외에서 먼저 공개됐다. ‘미드나잇 스크리닝’은 주로 장르 영화와 상업 영화가 선보이는 비경쟁 섹션으로 칸의 주요 부문 시상에서는 제외된다.영화에 대한 칸에서의 해외 매체의 반응은 호평보다는 비판적인 평가가 더 우세했다. 스크린 데일리는 이 영화를 ‘B급 영화의 감성을 가진 뻔한 재난영화’라고 혹평했고, 버라이어티는 ‘인상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내놓을 만한 액션 영화 (serviceable action flick)’라고 평하며 조금은 우호적인 시선을 보냈다.재난영화라는 장르적 레이블을 달고 나온 영화인 만큼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에서는 공항대교 위에서 벌어지는 ‘재난’이 영화의 중추가 된다. 극심한 안개와 악천후 때문에 발생한 연쇄 추돌사고와 헬리콥터 사고 (뒤에 언급할 다른 사건과 관계한)로 인해 공항대교는 붕괴 직전에 이른다. 저마다 각기 다른 이유로 공항대교를 건너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한순간에 다리 위에서 고립된다. 그러나 이야기는 곧 다리의 붕괴뿐만이 아닌 또 다른 재앙이 다리 위에 감춰진 사실을 드러내며 반전을 보인다.
사람들과 함께 다리를 건너던 무리 중에는 극비리에 이송 중이던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군사용 실험·살인견들이 있었다. 추돌 사고로 인해 이들이 풀려나면서 다리 위의 사람들이 개들의 타깃이 되어 무차별 공격당하는 통제 불능의 상황이 벌어진다. 공항으로 향하던 안보실 행정관(이선균)은 사고를 수습하고자 청와대와 연락을 취하지만 군에서는 이를 저지한다. 우연한 상황으로 그곳을 찾은 레커차 기사(주지훈), 그리고 실험견들을 극비리에 이송 중이던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책임연구원(김희원) 역시 저마다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를 하지만 그 어디에도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다.재난영화로서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가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지점 (기존에 제작되었던 다른 재난 블록버스터 비교했을 때)이 있다면 사건을 전개하는, 혹은 가시적으로 보이는 재난, 즉 안개는 영화에서 맥거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리의 붕괴를 초래한 결정적인 요인은 살인견들을 통제하기 위해 군에서 급파된 헬리콥터가 다리의 한 축을 파괴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개로 인한 연쇄 추돌 사건은 진짜 재앙을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한 것이고, 영화의 진정한 재난이자 재앙은 사람을 살상하는 무기로 고안된 실험견 11마리다.문제는 CG가 집약된 이 살상무기견이 전혀 (시각적으로) 위협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약간의 험악한 표정을 가미해서 만들어진 일반적인 대형견 사이즈의 핏불은 길에서 마주칠 법한 반려견과 큰 차이가 없다. 또한 이들이 아무리 무기로 개발된 개들이라고 해도 고작 11마리가 다리 위의 몇백명의 시민들을 전멸시킨다는 설정은 다소 억지스럽다. 다시 말해, 영화의 중추가 되는 재앙의 근원은 시각적으로도, 그 무리의 양으로도 공포를 자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영화의 두 번째 문제는 장르와 설정에 대한 이슈다. 생존자들의 개인 서사가 소개된 이후 영화의 중후반에서는 ‘개들의 서사’가 펼쳐진다. 이기적인 인간이 실험을 위해 몇백 마리의 개들을 희생시켰고 그것을 목도한 ‘엄마 개’가 복수를 하는 것이라는 연구원의 고백을 통해 재현되는 개의 서사는 전체 영화의 기류 (재난 블록버스터를 표방하는)와 전혀 다른 재현 모드, 즉 <집으로>나 <멍뭉이> 류의 강아지 영화에서 볼 법할 멜로적이고도 신파적인 톤으로 전달된다.
아마도 스크린 데일리에서 B급 감성을 가진 영화로 이 작품을 평한 것은 이러한 이질적인 장르적 요소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재난물과 코미디, 정치 서사와 선한 시민의 대립, 강아지와 인간 등 다소 중구난방의 불균질한 서사적 구조와 장르적 외피 사이에서 이야기를 따라가려는 투혼을 벌여야 하는 영화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를 꼭 스크린으로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그것은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이선균 배우의 정면 클로즈업 때문이다. (극 중의) 딸을 바라보며 생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듯한 그의 처연한 표정은 이 영화의 모든 패착을 잊게 할 정도로 강렬하고, 서글프다. 배우의 실제 삶과 스크린 속 삶이 정확히 교차하는 그 한 지점, 그 지점을 기억하고 추도하기 위해 이 영화는 그럼에도 널리 공유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우리가 사랑했던 이선균 배우를 추모하며.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