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사이시 조, 비엔나에서 교향곡으로 전하는 동화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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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진섭의 한 판 클래식캐릭터들이 비엔나 거리를 행진하는 동화적 교향곡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청각화, 히사이시 조
히사이시 조 비엔나 교향곡 2번 | 비올라 사가
Joe Hisaishi In Vienna Symphony No.2 | Viola Saga
히사이시 조 (譲久石, Joe Hisaishi)는 일본 뮤지션 중에서 故 류이치 사카모토(坂本龍一, Ryuichi Sakamoto)만큼 국내 음악 팬들에게 존재감이 크다. 1980년부터 현재까지 나온 일본의 수많은 애니메이션, 게임, 영화 등과 함께 성장한 이들에게 히사이시 조의 음악들이 때론 포근하고, 소박한 소리의 잔향과 더불어 역동적이고, 초월적인 세계관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히사이시 조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984년 작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애니메이션(극장판)에서 OST 작곡가로서 큰 성공을 거둔 이후, 그의 거의 모든 작품에 음악적 상상력을 더했다.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붉은 돼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등 미야자키 하야오가 구현한 캐릭터와 세계에 찰떡 맞춤인 음악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꾸준한 이끌림을 불러일으켰다.애니메이션 뿐 아니라,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Kitano Takeshi) 감독의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소나티네>, <키즈 리턴>, <하나-비> 그리고, <기쿠지로의 여름> 등을 포함해 여러 영화 속에서 그가 들려준 음악들은 이야기가 흐르고, 상상력이 더해지고, 또 다른 감상의 문이 열리는 촉매제 같았다.
작곡가를 넘어, 지휘자에 도전하다 최근 몇 년간, 히사이시 조는 관현악 작업에 집중하면서, 클래식의 본고장 비엔나를 여행하며, 클래식 음악의 본질을 탐구해왔다. 2021년, 코로나로 모두가 격리의 시간을 보낼 때, 그는 도쿄 근방에 작은 오두막에서 홀로 노트를 정리하며, Symphony No.1과 오늘 소개할 앨범 Symphony No. 2를 만들었다. 평소 말러리안(구스타브 말러의 열혈팬)임을 자처한 그는 클래식 본토인 비엔나에서 작곡가를 넘어 지휘자로서 행보를 이어갔다.‘비엔나 필하모닉오케스트라(Wiener philharmoniker)’와 함께 비엔나에 상주하고 있는 또 하나의 명문 오케스트라인 ‘비엔나 심포니오케스트라(Wiener Symphooniker)’와 ‘BBC Radio 3 뉴제너레이션 아티스트’로 선정되었고, 2019년 BBC 뮤직 매거진 어워즈에서 심사위원상 중 하나인 ‘올해의 초연(Premiere of the Year)상’을 받은 비올리스트 앙투안 타메스티트 (Antonie Tamestit)가 협연해, 히사이시 조의 상상력을 구체화했다.
히사이시 조의 동화 같은 교향곡과 비올라로 켜 내려간 전설시가 담긴 앨범 2023년 3월 30일 ‘비엔나 뮤직베레인(Vienna Musikverein)’에서 클래식 지휘자로도 포디움에 섰다. 이때 자신의 현재를 만들어 준 ‘모노노케 공주’, ‘하나비’ 등 여러 곡을 협연하면서, 자신이 작곡한 교향곡 2번을 지휘했다. 앨범은 당시 실황을 도이치그라모폰이 스튜디오 버전으로 녹음하여 내놓은 것이다. 비올라 사가 (Viola Saga)의 경우, 2022년 [Music Future vol.9]에서 초연한 작품인데, 이번에 비올라와 오케스트라의 협주곡으로 재구성했다.
“클래식 음악 안에 ‘과거’와 ‘유산’이 들어있다... 그 전통과 유산은 매일 업데이트되고, 연결된 상태로 유지된다. 즉 클래식 음악은 ‘과거’인 채로 머물러 있지 않다... 최근의 클래식 음악 지휘에 도전하게 된 것은 작곡가의 입장에서 미래의 클래식이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히사이시 조 인터뷰 중에서
1악장 What the World Is Now?, 2악장 Variation 14, 3악장 Nursery Rhyme 등으로 구성된 히사이시 조의 교향곡 2번은 그가 작업한 100여편의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음표와 리듬으로 터지는 느낌을 준다. 현란한 타악기의 합창이 곡 내내 펼쳐지고, 미니멀한 음절이 결합과 해체를 반복하면서, 여러 차원의 소리가 열리는 전개가 흥미롭다. 오래전부터 미니멀리즘과 신고전주의 양식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던 그가 자신의 교향곡에서 이 질료들을 발판 삼아 자신만의 실험을 하는 듯했다.사가는 2개의 Movement로 이뤄져 있다. ‘영웅 서사시’라는 의미를 반영하듯, 드라마틱한 역동성과 선율의 밀당이 감상의 재미를 더하는 곡이다. 곳곳에 분산화음을 넣어, 비올라가 주는 악기 본연의 모습과 관악단의 소리 진행에 묘미를 더한 것도 인상적이다.히사이시 조는 자신은 작곡가의 악보를 창작할 당시의 의도대로 소리의 구조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연주 방식을 고수한다. 작곡가의 입장에서 재현하는 그의 본연의 모습이기도 하고, 말러리안다운 면모기도 하다.
지휘자로서 히사이시 조의 행보는 그동안 쌓인 음악적 층위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풍부한 음악 유산과 서양 고전 전통에서 영감받은 것과 오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아온 음악적 층위가 포근한 미소로 쉴 새 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 할아버지의 포근함과 닮았기에. 낯설지 않다.
이진섭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