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사비 쥐어짜기가 불러올 부메랑

최태진 대한건설협회 서울시회장
최근 우리 사회는 저출생, 가계부채 증가 등 여러 분야의 이슈가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을 걱정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겪는 현상들은 반드시 내일의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현재 건설산업 상황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점차 심화한 공사비 부족 반영 현상은 빈번한 유찰로 사업을 지연시키고, 시설물 적기 미공급 등 국민적 편익을 갉아먹을 부메랑이 될 수 있다.건설기업은 수주해야 운영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현장을 들여다보면 극심한 수주난 속에서도 발주되는 주요 공사들이 건설기업으로부터 외면받는 비정상적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통계자료를 보더라도 작년부터 유찰된 공사 규모가 4조2000억원에 달한다. 재건축 등 정비사업 현장에서도 공사비 분쟁 및 공사 중단으로 지난해 착공 건수가 최근 10년 평균 대비 39.5%, 특히 서울은 27.5%에 불과한 심각한 공급 부진이 발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금리, 자재비, 인건비가 치솟는 데다 각종 규제로 투입되는 공사비가 급등한 반면 지급받는 공사비는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 기반 시설을 공급하는 공공부문은 수십 년간 사실상 고정된 낙찰률과 발주자의 공사비 삭감 관행 등으로 시공사가 수지를 맞추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일반관리비, 이윤을 제외하고 오롯이 시공에만 투입되는 순공사비마저 확보하지 못하는 금액으로 낙찰받아 시공하다 보니 건설기업의 체력이 급속히 약해지고 있다. 지금 당장은 공사비 부족을 건설업체의 뼈를 깎는 절감 노력으로 상쇄한다고 하더라도 이 상황이 지속되면 다양한 부작용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이는 건설산업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연관 산업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최근 정부 발표 자료에도 나타나듯 건설경기 침체와 건설기업의 수익성 악화로 청소, 방제, 부동산서비스업 등 연관산업의 서민 일자리가 급감하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아울러 지속적인 공사비 부족 문제는 정보기술(IT) 강국의 장점을 훼손하고, 국가경쟁력을 약화할 수 있다. 우리 IT 기술이 아무리 우수해도 현재의 불규칙한 도로망에서 자율주행 로봇이 주행하기 어렵고, 사물인터넷(IoT) 시스템이 확충되지 않은 시설물에서 인공지능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공사비 확보는 건설산업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민 복지와 국가경쟁력의 문제다. 이것이 최소한의 순공사비 확보와 낙찰률 상향이 필요한 이유다.

공사비 쥐어짜기는 언젠가 우리를 위협할 예고된 부메랑이다. 이를 막기 위해 모두가 당장의 눈앞의 이익을 버리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부와 발주자는 최소한의 순공사비 반영, 적정한 낙찰률 상향 등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 시공자도 품질과 안전 강화, 기술 개발에 노력해야 한다. 새로 개원한 국회에서도 이 같은 상황이 개선될 수 있도록 앞장서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