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집행위·회원국, '친러' 헝가리 의장행사 보이콧…공개충돌(종합)

집행위원단 방문 취소·장관급 회의 참석자 격하…EU 외교수장은 '따로 회의'
헝가리 총리의 '조율 안 된' 중·러 방문에 '부글부글'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와 회원국들이 하반기 순회의장국인 헝가리 주최 주요 행사에 대한 사실상의 보이콧을 선언했다. 에릭 마메르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15일(현지시간)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헝가리가 의장국을 시작한 뒤 벌어진 최근의 상황을 고려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헝가리가 주최하는 비공식(informal) 이사회에 고위 공무원만 집행위 대표로 참석하도록 결정했다"고 밝혔다.

비공식 이사회는 정례 장관급 회의와 별개로 의장국이 수시로 개최하는 분야별 장관회의로, 보통은 국무위원에 해당하는 담당 집행위원이 참석한다.

그러나 헝가리가 주최하는 모든 장관급 회의에 집행위원들이 불참하겠다는 의미다. 마메르 대변인은 또 의장국 임기 시작과 함께 관례적으로 이뤄지는 국무위원단 격인 집행위원단의 헝가리 방문도 이뤄지지 않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방침은 별도 기간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집행위는 전했다.

최악의 경우 헝가리가 의장국을 맡는 6개월 내내 비정상적 상황이 계속될 수 있다. 브뤼셀과 룩셈부르크에서 열리는 정례 장관급 회의의 경우 의장국이 주최하지 않아 정상적으로 개최될 전망이다.

이는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이달 1일 순회의장국직을 맡자마자 '평화임무'를 자임하며 러시아와 중국을 잇달아 방문한 데 따른 대응이다.

앞서 EU 27개국을 대표하는 이사회 차원에서도 오르반 총리의 행보에 공개 불만이 표출됐다. EU 외무 장관들은 EU 하반기 순회의장국인 헝가리가 자국에서 주최하는 행사를 보이콧할 예정이라고 폴리티코가 보도했다.

헝가리는 내달 28∼29일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외무 정상회의를 열 계획이었으나,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오르반 총리가 주최하는 외무 정상회의와 같은 날 EU 공식 외무 장관 회의를 열 예정이라고 복수의 EU 소식통이 전했다.

이 같은 계획은 프랑스, 독일 등 일부 회원국과 비공식적으로 이미 논의됐으며 보렐 고위대표는 오는 17일 관련 계획을 회원국에 내놓을 예정이다.

한 소식통은 만약 보렐 고위대표가 주최하는 공식 외무 장관 회의가 같은 날 있다면 장관들은 부다페스트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다른 EU 회원국 외무장관들이 부다페스트 회의를 보이콧함으로써 헝가리가 EU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내길 원한다고 전했다.

친(親)러시아 성향의 오르반 총리는 그동안 러시아와 협상을 통한 전쟁 종식을 주장하며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하고 EU의 대(對)러 제재를 비판하는 등 EU와 충돌해왔다.

원칙적으로 순회의장국은 EU 입법 과정에서 중재 역할이 주된 임무로, 대외적으로는 EU를 대표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의장국'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상 개별 국가의 입장이 대외적으로 EU 전체를 대변하는 것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오르반 총리가 자국 외교정책의 정당성과 국제 무대에서의 존재감을 부각할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의장국 명함'을 활용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