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 헬멧 쓴 아테나 여신상…천년 뒤 서울 그려온 다니엘 아샴

서울 3024-발굴된 미래

시간 앞에 덧없는 인간의 문명
직관적이고 독창적으로 담아
Athena Helmeted Found in Bukhansan 3024(2024)
미국 작가 다니엘 아샴(44·사진)은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인기 있는 작가’ 중 하나다. 2007년부터 조각, 회화, 건축,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해온 그는 퍼렐 윌리엄스 등 세계적 뮤지션, 티파니·디올·포르쉐 등 명품 브랜드, 포켓몬스터 등 대중문화 브랜드와 끊임없이 협업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144만여 명에 달한다. “상업성이 지나치다”는 비판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누구나 쉽게 예술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철학이다.”상업적 성공도 독창성과 작품성이 받쳐줘야 가능한 법. 아샴이 즐겨 다루는 주제는 ‘상상의 고고학’이다. 휴대폰과 카메라처럼 일상적인 현대 물건들이 수백~수천 년이 흐른 뒤 유물로 취급받는 상황을 표현한 회화, 조각 등을 제작하는 것이다. 자칫 허황돼 보일 수 있는 주제지만 그의 작품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우면서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작품을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비롯한 수많은 권위 있는 미술관이 소장한 이유다.

서울 롯데월드타워 7층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 3024-발굴된 미래’는 아샴의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전시다. 25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이 전시장에 나왔다.

‘3024년 북한산에서 발견된 헬멧 쓴 아테나상’은 아샴이 이번 서울 전시를 위해 그린 신작이자 그의 대표적인 화풍이 반영된 그림이다. 작품 제목처럼 1000년 뒤 북한산에서 서양 고대 유물이 발견된 장면이 그려져 있다. ‘발굴 현장’도 같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설치 작품이다. 폐허가 된 서울의 지하를 구현한 공간을 만든 뒤 부식된 카메라와 컴퓨터 등을 석고로 떠 넣었다.이런 작품 주제를 선택한 계기는 어린 시절 겪은 허리케인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아샴은 “미국 마이애미에 살던 시절 허리케인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보며 인간의 무력함과 문명의 덧없음을 느꼈다”며 “2010년 남태평양 이스터섬을 방문해 고대 유적과 발굴 현장을 보고 나서 지금의 주제를 정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Fractured Idols VI(2023).
Quartz Crystallized Pikachu Pokemon Trading Card II(2020).
작품 전반에서 느껴지는 특징 중 하나는 무채색에 가까운 독특한 색감이다. 아샴은 “색맹이라 처음에는 색을 배제한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며 “지금은 시력 교정 렌즈의 도움을 받아 더 많은 색을 볼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작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포켓몬스터와 협업해 만든 조각, 관객이 석고 오브제를 스케치해 벽에 붙일 수 있는 참여형 작품, 영화 등 다채로운 장르의 작품이 나와 있다. 전시는 오는 10월 13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