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가루 집안' 최씨 가족, 지구 종말 앞에 찰지게 뭉치다 [서평]

어린 시선으로 본 가족 이야기
다양한 캐릭터들의 유머와 감동

"그림의 제목은 '콩가루'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최한라는 학교에서 가족을 주제로 그린 미술 숙제를 발표할 때 이렇게 말한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본인의 가족에 딱 알맞는 제목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어느 날 '콩가루' 최씨네 일가에 종말이 찾아온다. 최씨 가족은 남들처럼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가족 소설 <최씨네 종말 탈출기>는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바라 본 가족을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내용이다. 책제목에 있는 '종말'은 지구 종말과 가족 해체란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2013년 한경 신춘문예 최종심에 오른 바 있다. 당시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가족과 현대사회의 단면을 유머러스하게 전달한다"는 평을 받았다.

1년 전 엄마와 함께 외할아버지인 최씨네로 들어와 살고 있는 여덟 살 최한라가 소설의 화자다. 한라는 사람들의 아픔을 치료해줄 투명반창고 발명가가 꿈일 만큼 사랑이 많은 아이. 반목하는 가족들의 유일한 말상대가 어린 한라이기에, 한라를 통해 와전되는 어른들의 대화 내용이 웃음을 유발한다.

소설엔 한라 외에도 개성적인 인물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최씨네 집안 서열 1등인 외할아버지 최씨는 77세의 괴팍한 인물로, 과거엔 사진사였다. 한라의 엄마이자 최씨의 큰 딸은 반대하는 결혼을 강행해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졌고, 이혼 후 다시 본가로 돌아왔다. 히메란 별명으로 불리는 엄마의 동생 최고윤은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자로 거듭난 뒤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밖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늦둥이 남동생 정두섭, 최씨의 외도로 태어난 배다른 자식 최고준 등이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

백일 후 지구가 종말한다는 예언으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 한 무당이 최씨네를 찾아와 지구가 종말하는 날 최씨네도 전멸할 것이란 말을 남긴다. 가족들은 종말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처음으로 힘을 합친다. 홀로 어린 딸을 양육하며 때때로 과민한 모습을 보이거나, 고지식한 부친의 성격을 그대로 답습하던 엄마도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주도적인 모습을 찾아간다. 다른 가족들도 변화하는 모습을 한라가 바라보며 뿌듯해한다.

이야기 속 이야기, 액자식 구성의 서사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개성있고 매력적인 캐릭터의 숨겨진 사연들이 소설 속에서 또 한 편의 서사를 만들어낸다.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작품.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