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보 1호는 그림… 가로 5m 넘는 '청명상하도'의 비밀 [서평]

청명상하도

톈위빈 지음
김주희 옮김 / 글항아리
256쪽│2만2000원
북송시대 궁중화원 장택단이 그린 '청명상하도'의 후반부. /글항아리 제공
중국의 국보 1호는 무엇일까. 한국의 숭례문처럼 장엄한 건물도, 일본 광륭사 목조미륵보살반가상과 같은 아름다운 불상도 아니다. 북송 시대(960~1127) 궁중 화원 장택단의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라는 그림이다.

지난 2015년 청명상하도가 베이징 고궁박물원에서 처음 공개됐을 때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7시간 동안 줄을 서거나 밤새 대기한 이들도 있었다. 정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일제히 내달리면서 '고궁박물원 오픈런'이란 조어까지 등장했다. 무엇이 이 그림을 특별하게 만든 걸까.
<청명상하도>(톈위빈 지음, 김주희 옮김, 글항아리, 256쪽, 2만2000원)
최근 출간된 <청명상하도>는 256쪽에 걸쳐 중국의 국보 1호를 낱낱이 뜯어본다. 그만한 분량을 할애할 만하다. 가로 528㎝ 세로 24.8㎝로 길게 뻗은 화폭에 등장인물만 800명이 넘는다. 작가는 최선을 다해 모든 사람을 저마다 다르게 그렸다. 저잣거리를 세밀하게 기록한 것은 물론, 북송의 패망을 암시하는 상징들을 예리하게 숨긴 수수께끼 같은 작품이다.

청명상하도는 지금의 허난성 카이펑시인 북송 동경의 청명절 풍경을 묘사한 그림이다. 동경에선 겨울철 빙하 피해를 막고자 제방을 세웠다. 4월께 청명 절기를 전후로 얼음이 녹으면 둑을 무너뜨렸다. 이때 선박들의 물길이 뚫렸는데, 그림 제목의 '상하'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의미한다.
북송시대 궁중화원 장택단이 그린 '청명상하도'의 중반부. /글항아리 제공
책을 쓴 중국화 학자 톈위빈은 청명상하도를 두고 "보는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두루마리 형태로 돌돌 말린 청명상하도는 오른쪽에서 시작해 왼쪽으로 펼쳐진다. 소설이나 영화를 감상하듯 순서대로 읽어야 작가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청명상하도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다. 송 휘종(1082~1135) 재위 초기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휘종은 예술 방면으로는 두각을 드러냈지만, 정치에는 어두운 혼군(昏君)이었다. 1127년 북송이 금나라에 의해 멸망하자 작품은 여러 권력가의 손을 거쳤다. 태평양전쟁이 끝나면서 민간으로 흘러나왔다가 1953년부터 고궁박물원이 소장하고 있다.
북송시대 궁중화원 장택단이 그린 '청명상하도'의 도입부. /글항아리 제공
옅은 안개 속에서 걸어 나오는 당나귀 무리가 맨 먼저 보인다. 광주리 안에는 술을 데우기 위한 용도로 추정되는 숯이 들어있다. 저자는 "위대한 작품은 웅장한 장면으로 시작할 필요가 없다. 도리어 보잘것없는 도입부가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드는 아름다운 풍격을 완성할 수도 있다"고 평한다.

숲을 지나면 도시를 가로지르는 수로가 나온다. 태평성대처럼 왁자지껄한 모습이지만, 은연중에 긴장감이 도사린다. 주인의 통제를 벗어난 말은 민가로 내달리고, 줄기 가운데가 잘린 버드나무는 지나가는 상인들을 덮치기 일보 직전이다.
북송시대 궁중화원 장택단이 그린 '청명상하도'의 중반부. /글항아리 제공
위태로운 기운은 그림 중앙에 놓인 다리인 홍교에서 절정에 이른다. 다리 위에 노상을 펼친 백성들이 뒤엉킨 가운데, 수로를 지나는 선박들은 연쇄 추돌을 앞둔 형국이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나태한 군졸과 점집에 둘러앉은 선비들도 한심해 보이긴 마찬가지다.

도로변 약국의 광고판에는 '술로 얻은 병을 치료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향락에 찌들며 병들어가는 사회를 풍자한 걸까. "단도직입적으로 이 간판은 시대의 병폐를 명확하게 짚고 있다. 광고판은 황제의 주의를 환기하는 동시에 건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북송시대 궁중화원 장택단이 그린 '청명상하도'의 후반부. /글항아리 제공
책은 청명상하도에 얽힌 비밀들을 완성도 높게 풀어낸다. 미적 가치 외에도 당대 사회상을 연결 지어 해석한 대목들이 "가장 세속적인 동시에 가장 위대한 중국화"라는 저자의 표현에 설득력을 더한다.청명상하도의 제목에 얽힌 재미난 추측은 하나 더 있다. 24절기 중 하나인 청명절이 아닌, '정치가 맑고 깨끗하다(淸明)'를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중국 국보 1호의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