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가려고 몇년 고생했는데"…막대기 하나로 인생 갈렸다 [대치동 이야기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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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미술학원가 치열한 경쟁
'톱 5' 미대 합격 내세운 학원 수십 곳
'합격자 명단'·'합격생 재현작' 필수 홍보
"실기만 강조?…학원가 전략 바꿀 필요성"



미술학원 경쟁 이 정도였나…선릉역은 '전쟁터'
이들 학원의 공통된 타깃층은 일반고 학생이다. 예중·예고를 나온 학생들은 굳이 대치동 미술학원에 와서 수업을 듣지 않는다. 전문 화실에서 레슨을 받고, 소규모 그룹 과외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일반고를 나온 학생들은 학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학원들은 이런 수요를 반영해 상담부터 입학설명회, 성적관리, 실기 시험 준비를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맞춤형 커리큘럼'으로 미술학원 시장을 이끈다.수년 전 대치동 미술학원에서는 창조의아침, C&C미술학원, 천년의미소 등 브랜드 미술학원들이 잘 나갔다.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창조의아침은 1987년 개원해 현재 노량진, 홍대 등으로 70여개로 캠퍼스를 확장했다. 이 학원은 "입시 미술 전문 학원답게 오랜 노하우를 가지고 있어 자료도 상당히 많은 편"이라고 자신한다. 학생들에게 계속해서 사고력과 창의성을 길러주는 토론 수업 또한 하고 있다는 점도 내세운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서울대 준비반'에 특화한 학원으로 이름을 알린 리온미술학원이 신흥강자로 떠올랐다. 이곳은 서울대, 홍대, 이대 등 최상위권 미대를 졸업하거나 유학을 다녀오고, 대기업 디자이너로 일한 원장 직강으로 입소문이 나 인기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이화여대와 고려대 합격자를 다수 배출한 소묘 전문학원인 G1미술학원(현 이젠미술학원)이 뜨기 시작하며 기존 대형 브랜드 학원에 다니던 학생들을 끌어모았다.2015년경 대표 원장 2명이 직강을 한 한 유명 학원의 경우 원장 간 대립으로 학원이 쪼개지기도 했다. 자연히 학원끼리 유명 학생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 구도가 만들어졌다. 당시 학생들은 본인과 수업 스타일이 잘 맞았던 원장을 따라갔다. 이외에도 대형 브랜드 학원에서 빠져나온 강사진들이 따로 학원을 차리고, 해당 학원의 전략을 모방해 타지역에 개원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더 돋보이려는' 학원들…미대전문 재수학원서 '시대인재' 강사도
이렇다 보니 학원별로 합격자 명단을 내세우며 학생과 부모들의 시선을 빼돌리는 전략을 취하는 건 필수가 됐다. '00대 지원자 대비 합격률 73%', '서울, 수도권 주요 미대 합격 결과' 등 문구를 적고 홍보하는 식이다. '건대/숙대 집중반' 등 이름을 걸고 특정 대학 합격만을 보장한다고 내세우기도 한다. 이들 학원은 학생이 실제 대학 실기 시험에서 그린 것을 다시 그린 '재현작' 전시에 집중한다. '해당 학원에서 어떻게 배우고 어떤 식으로 그렸길래 합격했느냐'를 증명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입지가 줄어든 학원의 경우 예중·예고 입시반을 새로 만드는 전략을 세운다. 비교적 이름을 알리지 못한 학원 중엔 '재수생 장학 혜택'을 앞세우거나, 여름 방학 시즌을 맞아 '예비 고3을 위한 디자인 미대 여름 특강'을 홍보하는 곳들도 있다. 한 학원은 문 앞 전단에 "어느 학원에서도 교육하지 않는 그림 방식으로 학생들의 능력을 한계치 이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홍보했다.
이들은 유명 고입 학원 강사 직강으로 경쟁한다. 대성마이맥 출신 수학·사회탐구 강사가 수업을 진행하면, 이에 질세라 다른 학원이 시대인재 국어·영어 강사를 영입했다.
■ 이신 대치동 미대 입시 컨설팅 전문가 미니 인터뷰
지난 19일 대치동 이젠 미술학원에서 만난 이신 원장은 "합격자 배출 명단, 실기대회 수상 인원 등을 강조한 홍보문구에 휘둘리지 않고 학생 각자의 성적과 상황을 냉정하게 고려해 학원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원장은 서울대·이대·고대 합격자를 다수 배출한 원장이자 강남·서초교육청이 선정한 미대 입시 전문 컨설턴트다. 유웨이에서 미대 입시 컨설턴트를 했고 미대와 중동고 등 강남 자사고에서 미술 지도를 한 베테랑이다. 그런 그는 "실기만을 강조하는 미술학원가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학원들이 대학에서 정기적으로 주관하는 실기대회에 목매는 것에 대해 꼬집었다. 실기대회 수상 인원을 강조해 홍보 수단으로 내세우는 학원가 경쟁에 대해 그는 "사실상 대학을 지원할 때 상을 받은 혜택을 주는 건 국민대, 상명대 정도"라며 "수능 성적이 안 되면 수상 실적이 합격을 보장해줄 수 없는데도 학원의 실기시험 수상 이력을 보고 불나방처럼 몰려들어 홍보 전략에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과거 미술학원에서 치열한 경쟁을 일으킨 '교수 평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교수 평가는 유명 미대 교수들이 학원에 방문해 학생들의 우수작품을 골라내고 총평을 해주는 것을 말한다. 입시 실기시험에 대한 ‘고급 정보’를 주는 셈이다. 이 원장은 "한번 문제가 된 이후로 지금은 교수들이 학원에 와서 공식적으로 평가하는 자리가 없어졌다. 여전히 미술학원연합회에서 교수를 초빙해 치르는 시험이 있는데, 많은 수의 학생을 소수의 교수가 비공개 평가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미대 입시 전형이 변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단순히 실기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학원들이 비실기 전형 등 학생들 수요를 잡기 위한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림 실력을 중요하게 보지 않는 비실기 전형이 늘어났는데도 여전히 실기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학원이 많다. 아무래도 그림을 배우러 오는 학생들이 많을수록 수익성이 높아지기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비실기 전형이 유리한 학생의 경우 미술학원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야 한다"고 짚었다."입시 정보가 부족한 일반고를 다니는 학생이라면 미술학원에 전적으로 의지하는데, 학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생활기록부, 면접 관리 등 세분된 1:1 코칭을 늘려가야 한다"는 게 그의 얘기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