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비 앞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물에 잠긴 당진 시장과 학교

호우 경보 속 시간당 최대 81.1㎜ '물폭탄'에 속수무책
무릎까지 차오른 물에 곳곳 침수…상인들 종일 빗물 퍼내며 '한숨'
"(비 앞에서) 방법이 없잖아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허탈해서 침수된 영상이라도 찍은 거예요.

"
18일 오전 집중호우로 충남 당진시 읍내동 당진전통시장은 성인 무릎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는 침수 피해를 입었다.

이날 오후 당진 시내는 비가 소강상태를 보일 듯하다가 다시 굵은 빗줄기가 반복하면서 내렸다. 그치지 않는 빗속에서도 시장은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부모님과 농산물 및 식자재 납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신상욱(32)씨는 이날 오전 8시께 빗물이 들어찬 시장 내부 영상을 보여주며 "사람이 자연재해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했다.

신씨는 "부모님이 30년간 운영해오신 가게인데 더 큰 피해가 없어서 오히려 다행인 것 같다"면서 "이참에 대청소했다고 생각해야죠"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시장 내 가게들은 하나같이 바닥에 있던 물건들을 위로 올려놓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게 안에 들어찬 물을 빼내고 있었다.

시장 초입부에 있던 식당도 장판을 모두 들어내고 탁자와 의자도 쌓아 올린 상태로 바닥 청소 중이었다.

12년째 국밥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강모(67)씨는 흙이 묻은 바지를 무릎까지 올린 상태로 의자에 앉아 한숨 돌리고 있었다. 강씨는 "오늘 장사는 무슨, 못하쥬. 아침에 와보니까 물이 역류해서 다 넘치더라고"라며 손사래를 쳤다.

바로 앞 과일 가게에서는 2대 사장인 김모(46)씨가 넉가래 삽으로 빗물을 한창 밖으로 퍼 나르고 있었다.

과일 가게 1대 사장인 김씨 어머니도 쓰레받기로 고무대야에 물을 퍼 나르는 데 여념이 없다.

김씨는 "요즘은 더워서 밖에 내놓지 못하고 냉장고에 넣어둔 과일이 많은데 실외기까지 빗물이 침수돼 냉장고가 고장이 나버렸다"며 "밖에 내놨던 수박은 물에 잠겨서 팔지도 못하고 버려야 한다"고 착잡한 마음을 내비쳤다.
물이 빠진 뒤 진흙만 남은 도배·장판 가게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길게 세워진 도배지 밑동은 진한 갈색으로 변하는 등 침수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12년째 가게를 운영하는 김성은(56)씨는 "1998년도에 시장이 지금보다 더 크게 침수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다시 시장이 물에 잠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면서 "아까 물이 들어찰 때는 정말 무서워서 다 놓고 도망갔다"고 전했다.

35년간 떡집을 운영해 온 정재철(62)씨는 물에 잠겨 고장이 난 떡 제조 기계 모터와 부속품을 모두 분리해 하나하나 닦아주고 있었다.

정씨는 "모터가 모두 바닥에 있어 물에 잠기는 바람에 당분간 떡은 못 만들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시장에는 침수 복구 작업을 위해 모인 자원봉사자들이 도움의 손길을 모았다.

당진시 자율방재단 소속인 나정윤(58)씨는 머리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이웃이 이런 화를 당했다고 하니까 내 일 같다는 생각에 다 제쳐두고 달려왔다"고 전했다.

이날 마찬가지로 침수 피해를 입은 채운동 당진정보고등학교와 탑동초등학교는 오후에 적막함만 감돌았다.

학생들은 모두 귀가 조치된 가운데 교사들이 남아 침수된 학교를 정리하고 있었다.

전기시설이 있는 분전함이 반쯤 잠기는 바람에 전기를 차단해 건물은 어두웠다.

교사들이 직접 나서서 배수 작업을 하며 건물에 들어찬 빗물은 모두 빠져나갔지만, 바닥은 여전히 반짝거리며 빗물이 고여 있었다.
1층이 잠기면서 학교 집기류들은 모두 복도로 빠져나와 있었다.

하교하던 당진정보고 2학년 조가은(17)양은 "아침에 학교 건물 1층 안까지 물바다가 돼 선생님들이 물을 직접 밖으로 빼내고 계셨다"면서 "학교에 계속 있어야 할까 봐 무서웠는데 다행히 물이 다 빠지고 집에 갈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걱정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던 당진정보고 한 교사는 "학교가 저지대에 있어서 또 잠길까 봐 무섭다"라고 말하고는 다시 빗소리가 세지자 "아이고, 또 비 오네. 어쩐댜"라며 다시 복구 작업에 나섰다. 이날 당진에는 오전에 호우경보가 내려지며 시간당 최대 81.1㎜의 비가 쏟아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