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고 아차했다"…韓 '패스트트랙 발언' 사과

대표돼도 원내 입지 축소 우려
'韓 특검법' 이탈표도 의식한 듯
친윤 "우리 편에 2차 가해" 공세
< 한동훈 없이 셋만 한자리에 > 국민의힘 대표 선출을 위한 당원 투표를 하루 앞둔 18일 윤상현(왼쪽부터), 나경원, 원희룡 후보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서울시당 여성대회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다. 한동훈 후보는 해당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뉴스1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가 나경원 후보의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소 부탁’ 건을 전날 공개한 데 대해 18일 공식 사과했다. 경선 과정에서 한 후보가 잘못을 인정하고 한발 물러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뽑히더라도 원내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지적에 결국 고개를 숙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후보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신중하지 못했던 점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아무리 장관이지만 개별 사건에 개입할 수 없다는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예시로서 나온, 사전에 준비되지 않은 말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은 공수처법 등 악법을 막는 과정에서 우리 당을 위해 나서다가 생긴 일”이라며 “대표가 되면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재판에 대한 법률적 지원을 강화하고, 여야의 대승적 재발 방지 약속 및 상호 처벌불원 방안도 검토,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한 후보는 이후 기자들과 만나 “조건없이 사과한 것”이라며 “말하고 아차 했다. 이 얘기를 괜히 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전날 한 후보는 CBS 방송토론에서 나 후보가 과거 한 후보가 법무부 장관이던 시절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의 공소를 취소해달라’고 부탁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패스트트랙 사건은 2019년 더불어민주당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도입 법안 강행을 막는 과정에서 무력 충돌이 빚어지며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이 무더기 기소된 사건이다. 당시 나 후보는 원내대표를 맡았다.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은 “보수 공동체 의식이 없다”며 일제히 한 후보를 비판했다. 이철규 의원은 페이스북에 “잘못된 기소는 취소되는 것이 당연하다”며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속한 집단과 공익을 위한 것인지 분별해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기현 의원도 “정의로운 일에 온 몸을 던졌다가 억울한 피해자가 된 우리 동지들의 고통에 공감하지는 못할망정, 2차 가해를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적었다. 강승규, 강명구 등 대통령실 출신 의원들도 힘을 보탰다.한 후보의 발언을 두고 상대가 공격하면 바로 역공을 취하는 한 후보 특유의 화법이 화를 불렀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나 후보와 거리가 멀어지면 당 대표가 되더라도 한 후보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경우 야권이 추진하는 ‘한동훈 특검법’에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재표결에서 부결을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은 이날 “(한 후보가) 당 내부를 향해 수류탄을 스스로 던졌다”며 “한동훈 특검법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이탈표가 8표 이상 나올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열린 친윤계 중심 원외 포럼인 새미준(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정기 세미나에서는 나 후보와 원희룡 후보만 모습을 드러냈다. 한 후보는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이영수 회장이 이끄는 외곽 조직인 새미준은 지난해 전당대회에서는 김기현 후보를 지원해 당 대표로 당선되는 데 큰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에도 새미준이 한 후보의 대표 선출을 막기 위해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막판까지 나 후보와 원 후보 간 단일화에 힘을 실으리라는 것이다.

정소람/박주연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