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을 향한, 가장 빠른 자들의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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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다큐멘터리 6부작 '스프린트' 리뷰3만여 관객이 숨죽여 신호총 소리를 기다린다. 100미터 트랙 위에서 스타트를 준비 중인 8명의 여자 선수들. 색색의 손톱을 길게 붙인 셔캐리 리처드슨(미국)의 손가락도 땅바닥을 박찰 준비를 하고 있다. 2021년 도쿄올림픽 직전, 대마초 흡연이 적발돼 출전조차 못 한 그녀. 안티 팬들에게 한 방 먹일 기회가 왔다.지난해 8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단거리 결승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6부작 <스프린트>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간을 가르는 이 10초의 승부에 마지막 초점을 맞춘다. 평소 1.25배속이나 1.5배속으로 스트리밍을 즐기던 이들도 이 순간엔 재생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다.<스프린트>를 보는 즐거움은 종목 자체에서 비롯된다. 복잡한 룰도 거추장스러운 장비도 없이, 오직 맨몸 스피드로 판가름 나는 게 100미터, 200미터 종목이다. 선수들의 집념 가득한 눈빛, 0.01초로 메달이 뒤바뀌는 아슬아슬함, 관람객의 아드레날린까지 자극하는 질주의 순간이 있다.
노아 라일스, 셔캐리 리처드슨…
개성 넘치는 단거리 스타들 담아내
미국에 집중된 시선은 한계
다큐멘터리는 선수들 가까이에서 그 순간들을 담아낸다. 부다페스트 대회 두 달 전, 파리 세계육상협회 다이아몬트 리그에 전 세계 엘리트 선수들이 모여든다. 대회를 앞둔 식사 시간, 경쟁자들은 어깨를 부딪치며 인사하지만, ‘내가 최고’라는 은근한 과시도 빼먹지 않는다. 스프린터들은 트랙 위에서 가장 젊고 생생해 보인다. 100미터 세계 기록을 노리는 노아 라일스(미국)는 지금 최전성기다. 선수 이름이 호명될 때 두 팔을 벌려 사람들의 환호를 이끌어내는 쇼맨십과 스타성도 있다. 그런 그도 다큐 속 인터뷰에선 천식으로 골골대던 어린 시절을 진솔하게 터놓는다. <스프린트>는 경기장 밖 선수들의 불안과 강박도 놓치지 않는다. 도쿄올림픽에서 예상 밖의 100미터 금메달로 단숨에 스타가 된 마르셀 제이콥스(이탈리아). 인기곡 딱 하나 내고 잊혀지는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가수처럼 될까봐 두려워한다.
엄청난 개성으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 셔캐리 리처드슨도 기록 앞에서는 종종 무너진다. 해맑게 웃다가도 기자들의 질문에 날을 세운다. 그 대척점엔 차분한 개비 토머스(미국)가 있다. 하버드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그녀는 도쿄올림픽 여자 200미터에선 동메달을 따며 ‘초능력자’란 별명을 얻었다. 누가 울고 웃게 될까.이들이 상대할 최대 라이벌은 자메이카 선수들이다. 셰리카 잭슨과 일레인 톰슨 헤라 외에도, 2008년 올림픽 우승자였던 셜리앤 프레이저 프라이스가 도전 신화를 쓰고 있다. 다큐는 자메이카를 대표하는 육상 클럽인 엠브이피(MVP)클럽의 스티븐 프랜시스 감독과 선수들의 훈련 모습도 담아낸다. 단거리 신화인 우사인 볼트의 인터뷰도 반갑다. 그럼에도 <스프린트>의 초점은 미국 선수들에게 가 있다. 노아 라일스와 셔캐리 리처드슨 같은 유망주들이 마침 꿈틀거리는 시점이기도 했다. 덕분에 다큐는 이들의 활약으로 충분히 드라마틱한 순간들을 빚어냈다. 엔딩 또한 꽤 감동적이다. 선수들의 도전이 현재진행형이란 점에서 ‘엔딩’이라 부를 수는 없겠지만.파리 올림픽이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왔다. 다큐는 시즌 2를 예고했다. 모든 선수들의 인생 목표인 올림픽 메달을 걸고 더욱 격한 레이스가 펼쳐질 것이다. 두 발로 달려야 하는 인간은 영원히 치타를 앞지를 수 없지만, 기록은 남아 불멸한다.
넷플릭스는 볼만한 스포츠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선보여왔다. 셀러브리티들을 재조명한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와 <베컴>, 포뮬러 원 현장을 세밀하게 담은 <F1 : 본능의 질주> 등이다. 넷플릭스는 최근 미국 프로레슬링 단체인 ‘WWE’의 라이브 이벤트 ‘RAW’를 독점 중계하겠다고 나섰다. 애플, 디즈니 등 글로벌 OTT들의 중계권 경쟁엔 오히려 뒤늦게 뛰어든 셈이다.스포츠와 선수들의 세계는 때로 영화보다 드라마틱하다. <스프린트>엔 깊이 있는 인간 탐구나, 종목을 둘러싼 복잡한 정치 역학 같은 것은 없다. 대회를 빠짐없이 본 육상 팬들에게는 새로운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기대감을 예열하기엔 볼만한 다큐멘터리다. 김유미 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