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무더위'는 끈적하고 '강더위'는 불볕 같죠

무더위는 물기를 머금은 더위, 즉 습도와 온도가 높아 끈끈하게 더운 것을 말한다. 요즘같이 장마 속 습한 바람과 함께 오는 끈적한 더위가 무더위다. 이에 비해 오랫동안 비도 없이 볕만 내리쬐는 심한 더위를 가리켜 '강더위'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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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로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가 장마 속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한여름 복더위에 푹푹 찌는 더위를 나타내는 말로는 무더위를 비롯해 폭염, 폭서, 삼복더위, 불볕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 등 다양한 표현이 있다. 이 중 폭염(暴炎)과 폭서(暴暑)는 한자어고, 나머지는 순우리말 합성어다. 예전엔 폭염, 폭서가 자주 쓰였는데 요즘은 찜통더위 등 순우리말 표현이 더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아무래도 더운 상황을 나타내는 데 순우리말로 하는 게 더 실감 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데서도 몸에 익은 고유어가 한자어 등 다른 어떤 말보다 친근하고 설득력이 있다는 게 드러난다.

무지개는 ‘비가 만들어낸 하늘문’ 뜻

몹시 심한 더위를 나타내는 여러 말 중 ‘무더위’를 들여다볼 만하다. 이 말의 정체는 ‘물+더위’의 결합이다. 일상에서 쓰는 말 가운데 ‘물’과 어울려 이뤄진 게 꽤 많다. 무더위를 비롯해 무사마귀, 무살, 무소, 무서리, 무쇠, 무수리, 무자맥질, 무좀, 무지개. 이들이 모두 ‘물’ 합성어다. 이 중 ‘무지개’가 재미있다. 무지개는 옛말에서 ‘물+지게’인데, 이때 ‘지게’는 등에 짐을 질 때 쓰는 그 지게가 아니다. 이는 ‘문(門)’을 뜻하는 말이었다(홍윤표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 그러니 무지개는 곧 ‘비가 만들어낸, 하늘로 통하는 문’이란 뜻이다. 우리 조상들이 실체만큼이나 멋들어진 말을 붙여 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는 게 느껴진다.무더위가 ‘물’과 관련 있음을 알았으니 이제 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무더위는 물기를 머금은 더위, 즉 습도와 온도가 높아 끈끈하게 더운 것을 말한다. 요즘같이 장마 속 습한 바람과 함께 오는 끈적한 더위가 무더위다. 무더위를 나타내는 형용사가 ‘후텁지근하다’이다. 불쾌할 정도로 끈끈하고 무더운 기운이 있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오랫동안 비도 없이 볕만 내리쬐는 심한 더위를 가리켜 ‘강더위’라 한다. 이때의 ‘강-’은 한자말 ‘강(强)’이 아니라 순우리말이다. ‘마른’ 또는 ‘물기가 없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다.

강기침(‘마른기침’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강밥(국이나 찬도 없이 맨밥으로 먹는 밥), 강울음(눈물 없이 우는 울음) 같은 데에 이 ‘강-’이 쓰였다. 겨울철 눈도 없고 바람도 없이 매섭게 춥기만 할 때 쓰는 ‘강추위’의 ‘강’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강추위’를 모르고 그저 눈이 있건 말건 몹시 심한 추위란 뜻으로 ‘강추위’를 썼다. 그래서 <표준국어대사전>이 그것을 반영해 새로 만들어 올린 게 한자말 ‘강(强)추위’다. 그리고 고유어 ‘강추위’와 구별하기 위해 ‘눈이 오고 매운바람이 부는 심한 추위’란 풀이를 붙였다. 그러면 고유어 ‘강더위’에도 비가 오면서 매우 심한 더위를 가리켜 ‘강(强)더위’란 말을 만들어야 하나? 다행히 우리말에는 이미 ‘무더위’가 있어서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천렵’은 냇물에서 고기잡이 하는 일

지난 호에서 조상들이 즐겼던 최고의 피서법인 ‘탁족(濯足,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노는 것)’을 살펴봤다. 탁족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여름철 피서가 ‘천렵’이다. 내 천(川), 사냥할 렵(獵)을 쓰며 냇물에서 고기잡이 하는 일을 뜻한다. 천렵은 탁족의 풍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단체로 하는 물놀이를 말한다. ‘어렵(漁獵)’이라고 하면 낚시나 그물 따위로 물고기를 잡는 것을 의미하는데, 요즘은 이를 다듬어 ‘고기잡이’라고 표현하니 훨씬 쉽고 정감이 간다.
홍성호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인류의 역사를 말할 때 나오는 ‘수렵시대’의 수렵이 ‘사냥할 수(狩), 사냥할 렵(獵)’이다. 이는 총이나 활 또는 길들인 매나 올가미 따위로 산이나 들의 짐승을 잡는 일, 즉 ‘사냥’을 말한다. ‘수렵’은 사냥을 문어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다 우리말이지만 각각의 위상은 다르다. 수렵은 한자어고, 사냥은 귀화어다. 사냥은 어원이 ‘산행(山行)’인데 오랜 세월을 거쳐 우리말에 동화돼 한자어 흔적이 사라졌다. 이런 것을 ‘귀화어’라고 한다. ‘중생(衆生)’에서 ‘짐승’이, ‘간난(艱難)’에서 ‘가난’이, ‘감저(甘藷)’가 바뀐 ‘감자’ 등이 모두 귀화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