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점점 커지는 방향으로 변했다 [서평]

사이즈, 세상은 크기로 만들어졌다

바츨라프 스밀 지음
이한음 옮김/김영사
428쪽|2만2000원
“어떤 사람들이 다음 스타워즈 영화를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스밀의 새 책을 기다립니다.”

2017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자기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바츨라프 스밀(80)은 ‘빌 게이츠가 사랑하는 작가’로 통한다. 환경과학자이자 경제사학자이며, 캐나다 매니토바대 환경지리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사이즈, 세상은 크기로 만들어졌다>는 그의 신작이다. ‘크기’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세상을 들여다본다. “크기를 알아야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인간 몸을 비롯해 자동차, 비행기, 도시, 경제 규모, 자연 등에 있어 크기야말로 만물의 척도이며, 세상의 작동 원리라고 말한다.

현대 사회는 점점 더 커지는 쪽으로 변했다. 현재 가장 큰 수력 발전소 용량은 1900년의 것보다 600배 이상 크다. 같은 기간 철을 생산하는 용광로 부피는 5000㎥로 10배 증가했다. 고층 건물인 부르즈 할리파는 828m로 9배 높아졌고, 도쿄 대도시권 인구는 3700만명으로 11배 증가했다. 1908년 처음 생산된 포드의 모델T 자동차는 길이 3.4m에 540㎏에 불과했다. 요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라는 이름을 달고 팔리는 쉐보레 서버번은 5.7m에 2500㎏에 달한다. 집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평균 주택 규모는 1950년 100㎡였다. 지금은 250㎡를 조금 넘어섰다.
사실 생명체도 처음엔 작았다. 40억년 전 고세균에서 출발했다. 그러다 점점 커졌다. 여러 이점이 있다. 몸이 커지면 포식자에 맞설 수 있게 되고, 다양한 생물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또 대체로 큰 동물을 작은 동물보다 오래 산다. 큰 것은 사람의 눈길을 끈다.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앞에는 제프 쿤스가 만든 강아지 조각상이 있다. 높이 12m의 철근 구조에 흙을 채우고 그 위를 꽃과 풀로 덮었다. 예상을 벗어난 거대한 크기와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놀란다. 경외심이 들기도 한다. 이집트 피라미드, 파리 에펠탑, 로마 콜로세움 등도 그런 예다. 이를 영화에 적용한 것이 아이맥스(IMAX) 영화관이다. 새로 지은 아이맥스 극장 화면은 가로 24.4m, 세로 19.9m에 이른다. 건물 외벽이 광고판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크기를 작게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최첨단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의 경외심을 즉각 끌어내지는 못한다. 사람이 맨눈으로 구별할 수 있는 폭이 약 0.04㎜이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의 굵기 정도다.

물론 물리적 실체를 가진 것은 무한정 커질 수 없다. 가장 높이 자라는 나무는 110~125m까지 자란다. 무게를 지탱하기 어렵고, 뿌리에서 흡수한 물을 위로 끌어올리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석유를 운반하는 유조선 중 가장 큰 것은 1975년 진수해 나중에 56만DWT(중량톤수)로 확장한 시와이즈 자이언트호다. 100만DWT에 달하는 배가 등장할 것이란 예상도 나왔지만 금방 인기가 시들해졌다. 너무 큰 배는 정박할 수 있는 항구, 운항할 수 있는 항로가 제한됐다. 사고 위험도 크고, 조종도 힘들다. 시와이즈 자이언트호는 최고 속도로 운항하다 멈출 때 9㎞를 더 가야 했다. 회전 반경은 3㎞에 달했다. 풍력 터빈도 날개가 2m 길어지면 무게는 8배 늘어난다. 책은 크기와 관련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지점들을 짚는다. 다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열한 느낌이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기 어렵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다작(多作)하면서 모든 책을 훌륭하게 쓰기는 어려워 보인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