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한국 증시 색깔 바꿨다"…외국인 팔아치운 종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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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트레이드 명분으로 AI 쏠림 완화"재선 가능성이 높아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연관된 자산에 투자자가 몰리는 ‘트럼프 트레이드’가 증시를 바꿨다. 인공지능(AI) 관련 기술주로 쏠렸던 투자자 관심이 다음 투자처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증시에선 외국인 투자자들이 SK하이닉스를 비롯해 그 동안 많이 오른 종목에 대한 차익실현에 나서면서 코스피가 2800선 아래로 내려앉았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은 반도체 외의 산업군에서 차기 주도주를 탐색하고 있다.
美대선주자 '자국 우선주의' 경쟁에…반도체 무너져
코스피 현·선물 2.6조 팔았지만…산업재·IT 순매
트럼프 총격 피격 이후 AI 테마 쏠림 완화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9일 코스피는 2795.46에 거래를 마쳤다. 한 주 동안 2.15% 하락했고, 지난 4일 2800선을 돌파한 지 12거래일 만에 다시 2700대로 내려앉았다.외국인이 한 주 동안 유가증권시장에서 9146억원어치의 주식을 팔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코스피200 선물도 1조7093억원어치나 순매도했다. 개인과 기관은 현물주식을 각각 9306억원어치와 131억원어치 순매수했다.외국인의 한국 주식 매도 계기는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총격 피격이다. 피격 이후 오는 11월 치러질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 가능성이 짙어지면서 증시에서는 이른바 트럼프 트레이드가 펼쳐졌다.뉴욕증시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 방향 수혜가 기대되는, 화석연료 등 전통 산업군에 포함된 종목으로 투자금이 이동했다. 또 법인세 감면 기대감에 그동안 소외된 소형주도 꿈틀대기 시작했다. 과거 인공지능(AI) 산업 확장 수혜가 대형 기술주에 쏠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법인세 감면으로 AI 수혜를 받지 못하더라도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기면서다.이에 따라 이달 셋째주(15~19일) 들어 지난 18일(현지시간)까지 뉴욕증시에서 주요 지수의 희비도 엇갈렸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2.87% 하락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도 1.26% 빠졌다. 반면 전통 산업군에 포함된 대형 우량주가 포진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1.66% 올랐다. 소형주 중심의 러셀2000지수는 2.26% 상승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 상승은 명분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스닥지수와 S&P500지수의) 조정이 거칠게 나타나는 이유는 그 동안 미국 기술주에 쏠린 상승이 가팔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들어서만 수십차례 사상 최고가 기록을 다시 써온 나스닥지수와 S&P500지수와 달리, 코스피는 최근에서야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아쉬울 수밖에 없다. 뉴욕증시에서 기술주 중심으로 주가 조정이 나타나면서, 한국증시 주도주인 반도체 대형주들이 내려앉았고 이는 지수 하락으로 이어졌다.
반도체 대형주 차익실현하고, 2차전지서 도망간 외국인
특히 AI 테마를 주도하는 엔비디아로의 고대역폭메모리(HBM)반도체를 독점 공급하다시피 하면서 가파른 랠리를 펼쳤던 SK하이닉스의 낙폭이 두드러진다. 지난주 10.09%나 빠졌다. 이 기간동안 외국인은 SK하이닉스 주식을 7278억원 규모로 순매도했다. 최근 들어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삼성전자도 1642억원어치 팔았다. 한미반도체도 지난주 외국인 순매도 상위에 자리하고 있다. 순매도 규모는 923억원이다.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 상승이 반도체 대형주에 악재로 작용했다. 상황을 뒤집어보려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동맹국들에도 중국 반도체 산업 제재에 동참하라는 압박을 가하면서 지난 17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6.81% 급락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대만을 향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빼앗아갔다며 방위비를 더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해 반도체 섹터의 투자심리 악화에 힘을 보탰다.두산에너빌리티(외국인 순매도 규모 828억원)과 한전기술(361억원) 등 체코 원전 수주로 재료가 소멸된 원전 관련주, 그동안 주가가 가파르게 오른 HD현대일렉트릭(436억원)과 LS일렉트릭(319억원)에 대해서도 차익실현이 이뤄졌다.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정부 지원이 축소될 가능성이 큰 2차전지 관련 종목들도 외국인 순매도의 대상이 됐다. 외국인들은 한주 동안 LG화학과 삼성SDI를 각각 1484억원어치와 779억원어치 팔았다.
수출 호조 이끌 산업재·IT 섹터 순매수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수 상위는 산업재와 반도체를 제외한 정보기술(IT), 헬스케어 관련 종목들이 채웠다. 향후 성장이 기대되는 섹터 중 상대적으로 덜 오른 종목을 골라잡는 모습이다.한주 동안 외국인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삼성중공업이다. 1703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최근 예상 밖 컨테이너선 발주가 쏟아지면서 조선주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외국인들은 먼저 오른 HD현대그룹의 조선 계열사 대신 상대적으로 주가가 정체돼 있던 삼성중공업을 쓸어 담은 모습이다. 외국인은 HD현대그룹의 중간조선지주회사인 HD한국조선해양도 339억원어치 사들였다.
외국인이 두 번째로 많이 사들인 종목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다. 연초부터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했지만,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는 평가에 외국인들이 동의한 모습이다. 루마니아로의 K-9 자주포 인도가 본격화되면서 실적이 개선이 기대되는 데다, 추가 수주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어서다.
동맹국들도 방위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는 추가 성장 모멘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자체적으로 군사력을 증강하려는 국가가 늘어나면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우수한 한국산 무기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IT 섹터에서는 LG전자(외국인 순매수 규모 845억원), LG이노텍(590억원), 삼성전기(582억원)이 외국인 순매수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LG전자는 소비자 가전제품을 만들던 경쟁력을 기업간거래(B2B) 사업에 활용하면서 추가 성장 여력이 점쳐지고 있다. LG이노텍은 AI 기능이 적용되는 애플의 아이폰16 시리즈의 판매량 증가의 수혜가 기대되는 종목이다. 아이폰을 비롯해 AI 기능이 적용된 IT기기 판매 증가에 따른 다중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수요 증가의 기대감에 삼성전기도 주목받았다.이외에도 외국인들은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를 피하주사(SC) 제형으로 바꾸는 데 기술을 제공한 알테오젠(477억원), SK E&S 합병으로 화석연료 에너지 사업의 시너지가 기대되는 SK이노베이션(342억원) 등을 많이 사들였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