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이동일의 인사이드 K컬처….'호랑이는 살아있다'-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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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이에 연합뉴스 K컬처팀은 독자 제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이동일 연출가(연극학박사). 단국대 교수, 현 서강대 초빙교수.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과 '밀레니엄 프로젝트, DMZ 2000: 호랑이는 살아있다(Tiger Lives)' 연출, 덴마크 합작 프로젝트 '전쟁 후에(After war)' 등 총체극과 통섭형 작품 다수 연출. ◇ '밀레니엄 프로젝트, DMZ 2000: 호랑이는 살아있다(Tiger Lives)'
'호랑이는 살아있다'(Tiger Lives)는 냉전의 상징인 비무장 지대를 예술적인 이벤트를 통해 평화의 상징으로 변모시켜 세계적인 생태학의 중심이 되는 관광지로 만들자는 의도에서 시작했다. 이는 정치를 넘어설 수 있는 예술의 힘을 보여주는 매우 의미 깊은 도전이었다.
작품 속에서 이 의도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병든 호랑이' 백남준 선생은 기꺼이 휠체어에 앉아 목청 높여 '금강에 살으리랏다'를 불렀다.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의 소음은 'Noise Opera'라는 실험적 형식으로 비티엘로가 부르며 함성과 비명 그리고 경고음이 섞인 소리풍경이 형상화됐다. 영상은 다시 음양오행의 중심인 불과 물로 돌아갔다. 불로 태우는 벽사의식과 물로 정화하는 새해맞이 의식이 파도의 율동과 그 위를 나르는 평화를 상징하는 새들과 생명과 역동을 상징하는 디스코를 추는 사람들의 이미지와 겹쳤다.
작품 속의 비디오 이미지는 짧고 빠른 템포를 유지하며 호랑이와 사자의 싸움 장면만 느린 템포를 섞은 흑백의 다큐 영상을 사용하여 'Global Groove'의 이미지와 교차 편집돼 보였다. 내레이션은 미국의 저명한 방송인인 러셀 코너가 맡아서 녹음했다.
'호랑이는 살아있다'라는 약 45분 분량의 비디오아트를 바탕으로 약 4시간 반 분량의 밀레니엄 공연 'DMZ 2000' 창작이 완성됐다. 먼저 자유의 다리 밑의 임진강변에서 임진각에 설치한 가설무대로 행진하는 길닦음으로 공연 서막의 막이 오른다.
지구상의 다섯 인종을 상징하는 배우들이 지난 전쟁과 기아 그리고 억압의 천년의 한을 안고 스러져간 영혼들을 얼어붙은 강변에서 오색천을 드리우고 모셔서 씻기는 초혼과 넋올리기를 박병천(인간문화재)이 이끄는 진도씻김굿의 형식으로 진행했다.
이어서 한국 역사 시극 '보자기'가 공연되고 미국 HOBT극단 대표인 연출가 샌디 스필러와 필자가 공동 연출한 다국적 공연단의 공연이 이어졌다. 지나간 천년의 문명이 피지컬 스코어 퍼포먼스로 형상화되고 김민기의 '철망 앞에서'가 합창 되는 가운데 분단을 상징하는 얼음벽 조형물이 무너지고 철조망이 불타오르며 새 천 년의 막이 올랐다. 고은 시인의 '2000 휴전선의 노래'가 박윤초 작창으로 판소리로 울려 퍼지고 평화의 종이 21번 타종이 되며 동서양을 상징하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조형물 '월금'과 '첼로'가 무대 위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이 조형물의 측면은 진영선 작가의 고구려 벽화 모티프의 프레스코 장식이 조각돼 있었다.
이 조형물 안의 모니터와 전 세계 87개국에 송출되는 실시간 방송에서 '호랑이는 살아있다'가 45분간 이어졌다. 이어서 세계적인 설치 미술작가인 강익중의 '십만의 꿈'은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받은 평화의 그림엽서 2천장을 담은 풍선 속에 담긴 채 하늘에서 흩뿌려지면서 4시간 30여분의 공연이 마무리됐다. ◇ '밀레니엄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이 프로젝트는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밀레니엄은 서구의 시간개념이다.
사실상 5천년 역사를 이야기하는 우리에겐 산술적으로 3천년을 무시해야만 하는 개념이다. 그런가 하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두 번 다시 맞이할 수 없는 시간이기에, 이 시간에 살고 있는 것을 자축하게 만들기도 한다.
실로 2천년이라는 시간과 그 공간은 전 우주의 극소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작게는 나로부터 크게는 전 세계적으로 문화적, 역사적, 종교적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지금까지의 2천년은 서구의 직선론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관으로 정리돼있었다.
문명의 발전도 A보다 나은 B라는 수직적 사고관으로 정리돼왔다. 그래서 지난 2천년은 많은 아픔과 반성을 자아내게 했다. 새로운 천년은 음양과 오행의 상생과 공존이라는 동양의 철학으로 융화돼야 한다. 동서의 만남은 새천년의 거대한 흐름이 돼야 한다.
우리는 이번 공연을 지난 천년의 반성과 새로운 천년의 축복이라는 두 가지 의미로 풀어내기로 했다. 행사 공간으로 DMZ라는 공간을 택하게 된 것은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진 지난 천년 반성의 장이자, 화해와 통일이라는 새천년의 과제를 염원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자국민만의 통일 염원제가 아닌 다민족 멀티미디어 퍼포먼스를 공연형식으로 택한 것은 지난 천년의 과오를 전 세계가 반성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단절의 정치적 상징 DMZ를 상생의 생태학적 상징인 DMZ로 만들자는 것이다.
미디어 아트의 아버지로 1999년 독일 경제 전문지 'Kapital'지에서 선정한 투자가치가 있는 세계 대표예술가 100인 가운데 8위로 소개됏던 백남준 선생의 예술가로서 위상은 지금 어디쯤 있는 것일까?
투자가치가 있는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도 좋지만, 세상에 없던 예술 장르를 만들어 낸 한국의 호랑이 백남준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불편한 몸으로 목청껏 '금강에 살으리랐다'를 열창하며 통일을 염원하던 한국인 백남준.
한바탕 웃음으로 힘든 여정을 가볍게 만들어 주셨던 유쾌한 백남준.
전 세계에 방영된 공연영상을 보시고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하셔서 '호랑이가 이겼다'라고 기뻐하시던 순수한 백남준.
2백여명의 창작진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글과 서명을 보내주셨던 따뜻한 백남준.
그가 주창한 '인본주의적 기술(Humanized technology)'의 가치를 이어 나갈 수 있는 기발한 창의력과 불굴의 도전정신을 품은 작은 호랑이가 많이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raphael@yna.co.kr
/연합뉴스
|이동일 연출가(연극학박사). 단국대 교수, 현 서강대 초빙교수.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과 '밀레니엄 프로젝트, DMZ 2000: 호랑이는 살아있다(Tiger Lives)' 연출, 덴마크 합작 프로젝트 '전쟁 후에(After war)' 등 총체극과 통섭형 작품 다수 연출. ◇ '밀레니엄 프로젝트, DMZ 2000: 호랑이는 살아있다(Tiger Lives)'
'호랑이는 살아있다'(Tiger Lives)는 냉전의 상징인 비무장 지대를 예술적인 이벤트를 통해 평화의 상징으로 변모시켜 세계적인 생태학의 중심이 되는 관광지로 만들자는 의도에서 시작했다. 이는 정치를 넘어설 수 있는 예술의 힘을 보여주는 매우 의미 깊은 도전이었다.
작품 속에서 이 의도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병든 호랑이' 백남준 선생은 기꺼이 휠체어에 앉아 목청 높여 '금강에 살으리랏다'를 불렀다.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의 소음은 'Noise Opera'라는 실험적 형식으로 비티엘로가 부르며 함성과 비명 그리고 경고음이 섞인 소리풍경이 형상화됐다. 영상은 다시 음양오행의 중심인 불과 물로 돌아갔다. 불로 태우는 벽사의식과 물로 정화하는 새해맞이 의식이 파도의 율동과 그 위를 나르는 평화를 상징하는 새들과 생명과 역동을 상징하는 디스코를 추는 사람들의 이미지와 겹쳤다.
작품 속의 비디오 이미지는 짧고 빠른 템포를 유지하며 호랑이와 사자의 싸움 장면만 느린 템포를 섞은 흑백의 다큐 영상을 사용하여 'Global Groove'의 이미지와 교차 편집돼 보였다. 내레이션은 미국의 저명한 방송인인 러셀 코너가 맡아서 녹음했다.
'호랑이는 살아있다'라는 약 45분 분량의 비디오아트를 바탕으로 약 4시간 반 분량의 밀레니엄 공연 'DMZ 2000' 창작이 완성됐다. 먼저 자유의 다리 밑의 임진강변에서 임진각에 설치한 가설무대로 행진하는 길닦음으로 공연 서막의 막이 오른다.
지구상의 다섯 인종을 상징하는 배우들이 지난 전쟁과 기아 그리고 억압의 천년의 한을 안고 스러져간 영혼들을 얼어붙은 강변에서 오색천을 드리우고 모셔서 씻기는 초혼과 넋올리기를 박병천(인간문화재)이 이끄는 진도씻김굿의 형식으로 진행했다.
이어서 한국 역사 시극 '보자기'가 공연되고 미국 HOBT극단 대표인 연출가 샌디 스필러와 필자가 공동 연출한 다국적 공연단의 공연이 이어졌다. 지나간 천년의 문명이 피지컬 스코어 퍼포먼스로 형상화되고 김민기의 '철망 앞에서'가 합창 되는 가운데 분단을 상징하는 얼음벽 조형물이 무너지고 철조망이 불타오르며 새 천 년의 막이 올랐다. 고은 시인의 '2000 휴전선의 노래'가 박윤초 작창으로 판소리로 울려 퍼지고 평화의 종이 21번 타종이 되며 동서양을 상징하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조형물 '월금'과 '첼로'가 무대 위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이 조형물의 측면은 진영선 작가의 고구려 벽화 모티프의 프레스코 장식이 조각돼 있었다.
이 조형물 안의 모니터와 전 세계 87개국에 송출되는 실시간 방송에서 '호랑이는 살아있다'가 45분간 이어졌다. 이어서 세계적인 설치 미술작가인 강익중의 '십만의 꿈'은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받은 평화의 그림엽서 2천장을 담은 풍선 속에 담긴 채 하늘에서 흩뿌려지면서 4시간 30여분의 공연이 마무리됐다. ◇ '밀레니엄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이 프로젝트는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밀레니엄은 서구의 시간개념이다.
사실상 5천년 역사를 이야기하는 우리에겐 산술적으로 3천년을 무시해야만 하는 개념이다. 그런가 하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두 번 다시 맞이할 수 없는 시간이기에, 이 시간에 살고 있는 것을 자축하게 만들기도 한다.
실로 2천년이라는 시간과 그 공간은 전 우주의 극소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작게는 나로부터 크게는 전 세계적으로 문화적, 역사적, 종교적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지금까지의 2천년은 서구의 직선론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관으로 정리돼있었다.
문명의 발전도 A보다 나은 B라는 수직적 사고관으로 정리돼왔다. 그래서 지난 2천년은 많은 아픔과 반성을 자아내게 했다. 새로운 천년은 음양과 오행의 상생과 공존이라는 동양의 철학으로 융화돼야 한다. 동서의 만남은 새천년의 거대한 흐름이 돼야 한다.
우리는 이번 공연을 지난 천년의 반성과 새로운 천년의 축복이라는 두 가지 의미로 풀어내기로 했다. 행사 공간으로 DMZ라는 공간을 택하게 된 것은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진 지난 천년 반성의 장이자, 화해와 통일이라는 새천년의 과제를 염원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자국민만의 통일 염원제가 아닌 다민족 멀티미디어 퍼포먼스를 공연형식으로 택한 것은 지난 천년의 과오를 전 세계가 반성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단절의 정치적 상징 DMZ를 상생의 생태학적 상징인 DMZ로 만들자는 것이다.
미디어 아트의 아버지로 1999년 독일 경제 전문지 'Kapital'지에서 선정한 투자가치가 있는 세계 대표예술가 100인 가운데 8위로 소개됏던 백남준 선생의 예술가로서 위상은 지금 어디쯤 있는 것일까?
투자가치가 있는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도 좋지만, 세상에 없던 예술 장르를 만들어 낸 한국의 호랑이 백남준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불편한 몸으로 목청껏 '금강에 살으리랐다'를 열창하며 통일을 염원하던 한국인 백남준.
한바탕 웃음으로 힘든 여정을 가볍게 만들어 주셨던 유쾌한 백남준.
전 세계에 방영된 공연영상을 보시고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하셔서 '호랑이가 이겼다'라고 기뻐하시던 순수한 백남준.
2백여명의 창작진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글과 서명을 보내주셨던 따뜻한 백남준.
그가 주창한 '인본주의적 기술(Humanized technology)'의 가치를 이어 나갈 수 있는 기발한 창의력과 불굴의 도전정신을 품은 작은 호랑이가 많이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raphael@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