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 사람들] ⑤ '든든한 소식통' 임진강 건너는 최전방 집배원

하루 평균 80km 이동하며 대성동·통일촌·해마루촌에 우편배달
조영기 문산우체국 집배원 "마을 주민은 내게 정겨운 이웃"

[※ 편집자 주 = 비무장지대(DMZ) 남쪽에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이 설정된 지 올해로 70년이 됐습니다. 민통선을 넘는 것은 군사적인 목적에서 엄격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민통선을 넘나들며 생활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기획 기사 10꼭지를 매주 토요일 송고합니다.

] "민통선 마을에서 배달할 때는 주소를 거의 안 봐요.

이제는 익숙해서 수취인 이름만 보면 알아서 찾아가죠."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경기 파주시 문산읍 통일대교를 건너면 통일촌, 해마루촌, 대성동 등 세 마을이 민통선 안에 있다. 마을과 마을 사이는 약 12km. 주민들과 군 관계자도 잘 이동하지 않는 1번 국도를 조영기(49) 문산우체국 집배원은 매일 한결같이 지나간다.

지난달 19일 뙤약볕이 내리쬐는 통일촌에서 만난 조 집배원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오토바이를 타고 홀로 고요한 마을을 누비고 있었다.

조 집배원은 문산우체국 직원 21명 가운데 유일하게 10년간 민통선 마을을 출입하고 있는 25년 차 베테랑이다. "임진강 건너편은 다른 집배원들이 잘 안 들어가려고 해요.

굉장히 멀기도 하고 농막 지역에는 지뢰가 매설된 곳도 있어서 위험이 따르죠."
매일 오전 8시 40분 문산우체국에서 출발해 인근 군인아파트에 배송을 마친 뒤 통일대교를 건너 세 개 마을을 방문한다.
통일촌 140세대, 해마루촌 60세대, 대성동 50세대 총 250세대의 소식통 역할은 온전히 조 집배원의 몫이다.

민통선 마을이라고 해서 배송하는 우편물은 별반 다르지 않다.

주로 등기와 고지서 등이라고 한다.

조 집배원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도심의 우편량은 반토막 났지만, 민통선 마을은 크게 줄지 않았다"며 "농사를 짓는 주민들이 많아 농업 관련 신문과 책자 등이 많다"고 말했다.

일반 도심 집배원들이 하루 평균 20km를 이동한다면 조 집배원은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총 80km를 이동하고 있다.

약 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민통선 마을의 배달을 마치면 오후 1시께 문산우체국에 땀범벅인 상태로 돌아온다.

점심을 때운 후 우체국에서 샤워하고 세탁방에 땀 젖은 근무복을 맡기는 것이 그의 하루 루틴이다.

매일 장거리를 이동하다 보면 오토바이에 기름이 떨어지거나 고장 나는 것은 일쑤다.

"해마루촌을 가다가 오토바이가 퍼진 적이 있어요.

고칠 수가 없어서 민통선 주민에게 전화해서 그분의 차를 타고 나왔어요.

"
민통선 안에서 배송하면 위험이 있지만 이곳을 변함없이 방문하는 이유는 도심과는 다른 정겨움을 느낄 수 있어서다.
"도심에서 아파트, 빌라 등에 우편물을 전달하면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고 조용하게 일을 할 수 있지만 민통선 마을에선 어르신들과 만나기 때문에 인간미를 느낄 수 있어요.

"
주민들은 밥을 먹고 가라고 조 집배원을 붙잡기도 하고 잔치가 열릴 경우에는 꼭 연락한다.

"통일촌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돈을 안 받거나 음료수라도 꼭 하나 챙겨주려고 한다"고 전했다.

조 집배원은 단순 집배원을 넘어 동네 어르신들의 '친한 이웃'으로 통한 지도 오래다.

그는 "남은 10년의 근무 동안 다치지 않고 민통선 마을 어르신들에게 발이 되어주는 정겨운 이웃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이날 통일촌에서 한 어르신이 조 집배원을 보자 기다렸듯이 다가와 공과금 납부 고지서와 돈을 건네며 대신 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당연하다는 듯 흔쾌히 부탁을 수락한 뒤 오토바이에 오른 그는 어르신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