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배우, 따뜻한 사람"…故 이선균이 주는 묵직한 '행복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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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균 형은 너무 정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연기하는 순간 뜨거웠고, 연기가 끝나면 따뜻했던 형님이죠. 지금도 보고 싶습니다."

영화 '행복의 나라'에서 고(故) 이선균과 호흡을 맞춘 조정석은 이같이 말했다. 연출을 맡은 추창민 감독은 이선균이 조정석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이 영화에 출연했다며 후일담을 전했다.22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행복의 나라' 제작보고회에서 연출을 맡은 추창민 감독은 이선규의 일화를 털어놨다. 그는 "이선균에게 왜 이 영화를 선택했느냐고 물었고, 이선균은 조정석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추 감독에 따르면 이선균은 "조정석이란 배우는 정말 좋은 배우"라며 "이 배우에게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고.

추 감독은 이선균에 대해 "이렇게 좋은 배우도 호기심, 열망이 있고 배우는 자세로 연기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조정석은 "형이 농담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너무 감사하다"면서 "그런 말씀을 하는 것 자체가"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저 또한 이선균 형님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했다.

이선균과 호흡에 대해 "제가 장난기가 많은데 그 장난도 다 받아주시면서도 촬영 현장에선 집념이 대단했다"고 언급했다.

유재명은 "이선균은 친구이자 동료"라며 "추억을 함께 가지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지금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이선균과 '킹메이커'에서 함께 했던 전배수는 "늘 한결같은 배우"라며 "무심한 듯하면서도 소외된 친구들을 챙기는 디테일한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떠올렸다.

최원영은 "인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분장에 할애했던 배우"라며 "현장을 걷는 뒷모습을 보고 이 사람은 진짜 연기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거들었다.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이선균 분)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조정석 분)의 이야기를 담았다.이 영화는 10.26 대통령 암살 사건에 대한 재판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실제 공판이 진행되는 도중 여러 차례 법정에서 은밀히 쪽지가 전달돼 이른바 '쪽지 재판'으로 불렸다. 작품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가려진 인물들을 재판해 영화적으로 재구성해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 이야기를 관객에게 소개한다.

추창민 감독은 "10.26, 12.12 사건은 많이 알려져 있으나 그사이의 일은 잊힌 것 같다"며 "흥미로운 지점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해 만들게 됐다. 영화는 시대의 기록이라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예민한 이야기라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라며 "기록에 의존해 최대한 중심을 잡았다"고 덧붙였다.

변호사 정인후 역을 연기한 조정석은 "10.26 사건은 잘 알고 있는 사건인데 대본을 보고 몰랐던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흥미를 느꼈다"고 밝혔다.

이어 "극 중 박태주를 변호하는 역을 맡으며 그를 변호하고자 하는 욕망이 치솟았다"며 "개인적으로 역사 공부도 됐고, 그런 이유에서 이 이야기에 참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가공의 인물인 정인후 변호사 캐릭터에 대해 조정석은 "법정 개싸움에 능한 친구"라며 "박태주의 변호사가 되고 심리가 변화하는데 그 지점이 어려웠다. 화가 치미는 순간에도 상황에 맞게 연기하려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강조했다.
밀실에서 재판을 도청하며 결과를 좌지우지하는 거대 권력의 중심 합수부장 '전상두' 역은 유재명이 맡았다. 이 캐릭터는 '서울의 봄' 황정민이 연기한 전두광, 즉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유재명은 "개인 혹은 집단의 욕망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며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것도 사실이지만 작품의 결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어 "캐릭터를 위해 실제로 머리를 면도하고 4~5개월을 살았다"며 "동료들도 응원하러 왔다가 놀라고 가족들도 놀랐다. 집에 스틸 사진을 걸어뒀는데 손님들이 많이 놀라시더라"라고 설명했다.

또 "'서울의 봄'과는 결이 다르다. 우리 영화만의 상상력을 비교하는 것도 재밌을 것"이라며 "황정민의 연기를 보며 무시무시했는데 내가 연기한 전상두는 중간에서 줄타기하는 인물이다. 시대상이 잘 보이도록 연기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전배수는 "첫 테스트 촬영 때 유재명이 머리를 깎고 왔다. 그 머리를 보고 이 영화 '되겠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추창민 감독이 조정석, 이선균까지 안 할 이유가 없었던 작품"이라며 "영화는 집요하게 촬영해 작은 화면으로는 디테일이 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큰 화면으로 봐야 디테일이 살기 때문에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아와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최원영은 이 영화에 대해 "우리가 놓친 아픔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묵직함이 담겨있는 부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추 감독은 "박태주 캐릭터의 모티브가 된 박흥주는 개인 묘지에 묻혀 있다"며 "이 영화를 통해서 그분이 세상에 소개되고 부당한 대우가 희석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거들었다.

'행복의 나라'는 8월 14일 개봉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