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이윤학의 일의 기술]

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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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훌륭한 노교수님이 탁자 위에 항아리를 올려놓고 학생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먼저 주먹만 한 돌을 항아리에 가득 넣고 '이 항아리는 다 찼나요?'라고 물었습니다. 학생들이 그렇다고 답하자, 이젠 조그마한 자갈들을 큰 돌 사이사이에 넣고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은 다소 의아해하며 대답을 머뭇거렸습니다.

이번에는 교수님이 가져온 모래를 꺼내더니 항아리에 가득 부었습니다. 같은 질문을 또 했습니다. '이 항아리는 다 찼나요?'. 그러자 눈치 빠른 어느 학생이 '아닙니다. 이제 물을 부어야 항아리가 가득 찹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교수님은 방긋 웃으며 항아리에 물을 붓고선 학생들에게 묻습니다."맞아요. 이제야 항아리가 다 찼습니다. 그럼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항아리를 가득 채웠을까요?" 그러자 한 학생이 "교수님은 평상시 시간의 소중함을 늘 강조하시는 분이니, 인생을 빈틈없이 촘촘하게 잘 관리하고 사용하라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예상과 다른 말을 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항아리가 인생이라고 한다면, 내 인생에 크고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는 말입니다. 만약 모래나 작은 돌을 먼저 부어 항아리가 가득 찬다면, 내 인생에 크고 중요한 돌을 넣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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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우리 삶은 '시간'처럼 총량이 제한된 여러 자원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순위가 중요하지요. 무엇이 먼저인가? 일인가? 여가인가? 돈인가? 가족인가? 사람들은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이 같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런데 이 둘은 같지 않습니다.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의 차이점은 뭘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건강을 위해 매일 달리기를 하겠다고 결심한 뒤 운동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운동을 하다가 넘어져 무릎에 피가 난다면, 빨리 응급 처치하여 피를 멎게 해야 합니다. 이건 급한 일입니다.

하지만 한 번 다쳤다고 운동을 그만둔다면, 그건 중요한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급한 일도 해야 하고 중요한 일도 해야 합니다. 그래도 급한 일을 빠르게 쳐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을 잊지 않고 하는 게 더 가치 있습니다. 급한 일을 처리하면 그 순간을 잘 넘길 수 있지만, 중요한 일은 그보다 큰 내 인생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모교 대학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학생이 질문했습니다. "졸업을 앞둔 4학년입니다. 취업해야 하는데, 어느 회사에 가야 할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질문을 받은 저는 난감했습니다. 그 학생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고, 너무 막연한 질문이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하나씩 풀어서 말했습니다. 핵심 키워드는 세 가지였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을 것, 그 일을 잘할 것, 그리고 오랫동안 할 것. 이 세 가지입니다.먼저 좋아하는 일입니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장기(長技)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먼저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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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천재'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고 싶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습니다. 그는 좋아하는 야구를 특출나게 잘하는 사람입니다. '투타(投打) 겸업'이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타니는 고교 시절부터 '8개의 프로 구단에서 드래프트 1순위 지명'이라는 당찬 목표를 세우고 자기만의 만다라트를 세웠습니다. 만다라트는 '목적을 달성하는 기술·틀'을 의미합니다. 본질을 뜻하는 '만달(Mandal)'에 소유를 뜻하는 '라(Ra)', 기술을 의미하는 '아트(Art)'가 결합해 만들어졌습니다.

오타니는 목표 달성을 위해 세부 실행 목표 72개를 설정 후 스스로 노력하여 8개의 프로 구단에서 드래프트 1순위 지명도 받고, 이후 LA 다저스로 이적하면서 10년간 총 7억달러(약 9700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제 그는 그 일을 오랫동안 잘 해내는 것이 마지막 목표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타니 쇼헤이 정도가 아니라면 좋아하는 일을 먼저 찾고 그중에서 상대적으로 잘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제 주변의 사례를 꺼내 보겠습니다. 제 지인은 지방에 있는 대학에서 인도어과를 졸업했습니다. 언어에 관심이 많고 다른 문화권의 사람과 만나는 게 즐거웠답니다. 졸업 후 실제 인도에 가서 공부하고, 그 뒤 미국에 가서 경영전문석사(MBA)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아랍계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고, 귀국 후 투자 관련 기업에 입사했습니다. 그 무렵 한국은 IMF 외환 위기 직후로 해외 자금 유치가 절실했는데, 이분은 그동안 사귀었던 아랍, 인도계 친구들이 큰 힘이 되어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이후엔 자신이 직접 투자사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것을 잘하는 일로 발전시킨 것입니다.

저 역시 좋아하는 일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제 첫 직업은 증권사 애널리스트였습니다. 글 쓰는 일을 좋아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애널리스트는 논리력 못지않게 직관력과 상상력도 풍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리포트를 써야 하니 글의 구성이나 표현력이 좋아야 합니다. 내용을 좀 더 잘 전달하려면 재미있는 비유로 논리를 뒷받침해야 하지요. 또한 투자 설명회와 같이 많은 청중이 모이는 자리에서 자신의 견해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아주 설득력 있게 말입니다.

결국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가 무슨 일할 때 가슴이 뛰었을까? 언제 무슨 일할 때 시간 가는 줄 몰랐을까? 시간을 두고 찬찬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다 보면 좋은 성과가 나오게 되고, 그것이 축적되면 잘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좋아한다고 모두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잘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속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게 만드는 편이 조금 더 희망적이고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한경닷컴 The Moneyist>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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