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힐빌리 성공신화 일궈낸 미국의 힘

정인설 워싱턴 특파원
미국 대선 구도가 급변하고 있다. 한 달 전만 해도 무미건조하게 전·현직 대통령 간 재대결로 가는 듯 싶더니 점입가경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TV 토론에서 맥없이 무너지는가 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총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급기야 바이든은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뒤 대선 후보직을 사퇴한 첫 현직 대통령이 됐다.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된 JD 밴스 연방 상원의원(오하이오주)도 주목받고 있다. 올해 39세인 밴스 의원은 오하이오주의 낙후된 소도시에서 태어난 시골뜨기다. 스스로를 못 배운 저소득 백인층을 지칭하는 ‘힐빌리(Hillbilly)’라고 불렀다.

'흙수저' 부통령 후보

그의 유년기는 가난과 불행의 연속이었다. 끼니를 때울 돈이 없었고 어머니는 마약에 찌들어 살았다. 외가로 옮겨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고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했으나 돈이 없어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하는 수 없이 학자금을 벌기 위해 2003년 해병대에 입대했다. 그는 군대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자평했다. 밴스 의원은 “힐빌리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며 “해병대에서 자기 관리와 노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5년간 군 복무 후 제대군인 혜택을 받아 2009년 오하이오주립대에 입학했다. 남들보다 5년 늦게 대학에 들어온 만큼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네 시간 이상 잠을 자본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결과 1년10개월 만에 정치학과 철학 복수전공을 이수했다. 그것도 수석 졸업이었다. 이후 장학금을 받으며 예일대 로스쿨을 다녔다. 2013년 졸업 후 실리콘밸리에서 벤처투자자로 변신해 부자가 됐다.

밴스 의원은 2016년 이런 자신의 성장 과정을 <힐빌리의 노래>라는 회고록에 담았다.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됐고 넷플릭스 영화로 제작됐다. 이 덕에 그는 전국구 스타가 됐다. 곧 정치 입문 제의를 받고 2022년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이 됐다. 37세에 상원의원이 된 데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가 큰 힘이 됐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

밴스 의원이 회고록에 쓴 것처럼 힐빌리들과 함께 대마초나 피우며 자기 비관만 하고 살았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다. 신세 한탄만 하는 다른 힐빌리들과 달리 흙수저라는 태생적 한계를 자기 노력으로 극복했다는 얘기다. 이런 ‘아메리칸 드림’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미국식 사회 구조도 자리 잡고 있다. 청년들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군대가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제대 군인에게 대학 입학 등의 혜택을 주는 것도 큰 역할을 했다. 저소득층 학생에게 학비를 주는 대학 장학금 제도의 위력도 무시할 수 없다. 사회적 약자가 신분 상승의 기회를 비교적 폭넓게 누릴 수 있는 사회 구조가 미국에 역동성을 더해주고 있다는 평가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계층 간 사다리가 미국만큼 촘촘히 놓여져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시간이 갈수록 ‘한국판 힐빌리’만 늘고 ‘코리안 드림’은 줄고 있는 건 아닐까.

정부도 이 같은 문제의식 아래 지난 5월 ‘사회 이동성 개선’ 대책을 발표하며 계층 간 이동이 가능한 사다리를 놓겠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밴스 의원 같은 성공신화가 정계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에 퍼질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