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벌의 고상한 수집 취미로 탄생한 빈티지 오디오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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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박물관 오디움 리뷰1930년대는 음악사에서 기념비적인 시대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기였고, 음향기기 제조사간의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졌던 때다. 오디오 회사들은 오디오 시스템을 저렴하게 만들어 대중적으로 파는 원가 경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억만금을 들여서라도 좋은 소리를 추구했다.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오디오 박물관인 '오디움'을 찾았을 때, 벽에 아슬아슬 매달려있는 것이 오디오 회사의 역작인 '대형 극장용 혼 스피커'라는 설명을 듣지 않았더라면 거대한 설치 미술작품인 줄 알았을 것이다. 어느 재벌의 고상한 수집 취미 덕분에 범상치 않은 외관의 빈티지 오디오 시스템을 한 눈에 감상해볼 수 있는 공간이 한국에도 생겼다. 세계적인 건축가 쿠마 켄고가 설계한 오디오 시스템 전시관인 오디움에서다. 지난 6월 5일 개관해 관객을 맞고 있다. '정음(바른 소리):소리의 여정'이라는 이름의 전시가 진행중인데, 도슨트의 해설과 청음 시간이 곁들여졌다.전시실에 들어서면 1930~1940년대에 제작된 대형 스피커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가운데 굵은 기둥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미국 웨스턴 일렉트릭사가 만든 영화 음향 '라우드 스피커'가, 오른쪽에는 독일 클랑필름이 생산한 '유로딘 스피커'가 나뉘어있다. 생김새는 둘 다 거대하고 멋은 없다. 하지만 이들로 소리를 들어보는 '청음회'가 이어지자 오디움이 지향하는 바른 소리란 무엇인지 관객이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정몽진 KCC회장 희귀 오디오 소장품 전시
1930~1960년대 오디오 스피커 등 빈티지 컬렉션 한 눈에
미국의 성악가 수잔 그레이엄이 부른 <아, 클로리스>를 두 나라의 오디오 제품으로 재생해 들어봤다. 두 레이블 간의 차이가 극명했다. 웨스턴 일렉트릭사의 스피커로는 노랫소리가 청아하고 전시실의 공기를 꽉 채우는 듯 들렸다. 클랑필름 스피커는 묵직하고 전시실 바닥과 벽을 두드리는 진동이 가득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정판으로 생산된 데다 절판된지 오래인 이 두 스피커로 한 곡을 감상할 수 있단 사실은 음향 기기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법하다.
오디움엔 수십년간 세계 희귀 오디오를 수집한 애호가 정몽진 KCC 회장의 소장품과 기증품이 대거 전시돼 있다. 운영은 서전문화재단이 맡고 있는데, '서전'이라는 이름은 웨스턴 일렉트렉을 한자로 차음(서부 전기)해 앞글자만 따 지었다. 전시관에는 1950~1960년대 보급된 가정용 스피커와 앰프가 소개된 공간도 있다. 청음 시간에는 클래식이나 해외 가곡, 팝송, 국내 대중음악을 틀어주는데 전시된 오디오 시스템에 맞춘 음악들을 선별해서 들려준다. 토니 오말리가 부른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 <마이 웨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니 명곡을 좋은 소리로 감상하는 기쁨을 알리고 싶어했던 수집가의 마음에 어느 정도 동조할 수 있었다. 지하 1층에 위치한 하얀 궁전같은 라운지는 공간의 기둥부터 천장까지 전체를 방염처리한 흰색 패브릭으로 감쌌다. 소리를 이상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소재 선택이라는 게 오디움 측 설명이다. 이곳에는 명곡 CD 1만 5000장, LP 10만 장도 전시돼 있다. 건축가 쿠마 켄고는 '숲'을 모티프로 하여 이 건물을 설계했다. 오디움의 외벽은 2만개의 알루미늄 파이프로 둘러싸여 있다. '숲속에 비치는 빛의 변화'를 형상화 했다는 설명이다. 건물 후면의 기다란 계단과 표면이 거친 돌로 지어진 외벽은 계곡을 의미한다. 오디움의 입구는 전면이 아닌 후면부에 있는데, 도시의 삶에 지친 관객이 숲을 돌아 소리를 만나는 특별한 공간으로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오디움에서 이뤄지고 있는 '정음'은 무료 전시지만 온라인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전시는 내년 12월 31일까지.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