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사퇴] 토요일밤의 결단…'명예로운 퇴진' 위한 막차 탔다(종합)

대선필패·선거자금 부족 보고받고 심야 가족회의…사퇴 결정 후 취침
끌려나가기 모양새 피하며 '아름다운 퇴장' 고심…'고뇌 찬 결심 이미지' 퇴로찾기
"체면 살리기 차원도…영부인 질 바이든 여사, 남편 자존감 지키기 위해 부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재선가도에서 물러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 '결정적 한방'은 대선 승리 가능성이 희박하고 선거자금 조달도 어렵다는 내부 보고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내 압박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에서 현직 대통령으로서 '위엄'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는 인식도 결단에 한몫한 것으로 관측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9일까지만 해도 완주 입장을 고수하다가 입장을 180도 바꿔 민주당 대선후보직 사퇴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격 발표했다.

바이든 선거본부 관계자 다수는 사퇴 당일인 21일까지도 대선을 반드시 완주할 것이라며 '대안 후보' 따위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짧은 기간에 바이든 대통령의 결단을 촉발한 결정적인 '뇌관'이 있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전략가는 바이든 대통령이 48시간 사이 완주에서 사퇴로 입장을 선회한 배경에는 자신으로는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맞서 이길 수 없다는 당내의 우려를 결국은 극복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있다고 말했다.

실제 민주당 내에서는 이미 30명이 넘는 의원이 공개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직 사퇴를 촉구했고, 선거자금을 대는 '큰 손'들은 물론 일반 당원들마저 등을 돌리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경합주를 중심으로 트럼프와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오면서 일단 버티면서 역전의 기회를 노린다는 전략이 실패했다는 데 점점 무게가 실리고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을 결단 하루 전 마지막으로 만난 최측근인 스티브 리셰티 고문과 마이크 다닐로 수석 전략가는 이런 실태를 구체적으로 보고했다.

미 정치전문매체인 폴리티코는 리셰티 고문과 다닐로 전략가의 보고에 모금실적과 선거본부 자체 여론조사 결과가 담겼다고 전했다. 여론조사는 지난주 바이든 선거본부 의뢰로 2개월여만에 수행된 것으로 극도로 비관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바이든이 6개 핵심 경합주에서 모두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뒤지는 건 물론 민주당 텃밭으로 여겨지던 버지니아주와 뉴멕시코주 등지에서조차 지지가 무너지고 있다는 진단이 골자였다.

선거자금 조달이 대선 때까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자체 평가도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폴리티코는 바이든 대통령은 이 같은 실태 보고와 관련해 리셰티 고문과 다닐로 전략가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대 결단을 앞두고 있을 때 반드시 하던 것처럼 같은 날 밤 가족회의를 연 것으로 전해진다.

폴리티코는 "바이든은 마침내 그가 승리할 수 없다는 걸 납득했다"며 두 측근의 보고서가 사퇴 결단을 촉발했을 수 있다고 해설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바이든 전 대통령이 당내 우군이던 이들로부터 느껴온 사퇴 압박이 더는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CNN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맞붙은 첫 TV 토론에서 참패한 이후 3주간 바이든 대통령은 거듭 자신이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사이 "그(바이든)의 이너서클은 최측근과 가족들로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델라웨어 사저에서 지난 하루 반 동안 사퇴 결정에 이르면서 그는 민주당에 반세기 넘게 충성했던 한 사람이 선거에 걸림돌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을 마침내 인정했다며 "그 어느 때보다 고립된 것으로 묘사돼 온 바이든은 막전과 막후에서의 압력을 이겨낼 수 없었다"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 본인과 개인이 예민하게 받아들인 변수는 '명예'였던 것으로 관측된다.

당내 사퇴 압력이 점점 강화되는 상황에서 조금 더 버티다가는 용퇴가 아닌 강제 퇴진으로 비칠 수 있다는 임계점에 직면했다는 얘기다.

폴리티코는 "더 많은 당내 원로가 공개적 압박을 가해올 것이란 걸 아는 상황에서 이런 갑작스러운 사퇴는 대통령이 이 결정을 (외압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내린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최선의 기회였다"고 풀이했다.

이 매체는 "이것은 체면을 세우는 움직임으로 (아내) 질 바이든에게는 큰 중요성을 지닌 것"이라면서 질 여사는 최근 있었던 내부 대화들에서 "남편의 자존감을 지켜야 한다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는 소식통 발언을 소개했다.

중도사퇴론의 단초가 된 바이든의 인지력과 건강 관련 논란은 이번 사퇴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본인의 정치적 미래를 숙고하는 과정에서 건강 문제는 딱히 중요한 변수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게 이 당국자의 전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7일 흑인 연예 전문 케이블방송 BET 뉴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대선 완주 의사 재고 가능성을 묻는 말에 의학적 상황이 발생한다면 출마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다른 상황들이 더 우선적으로 고려됐다는 것이다.
같은 날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델라웨어 사저에서 자가 격리에 들어갔던 바이든 대통령은 주치의의 일상적인 검진 외에 특별한 검사를 받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보좌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버티기'를 한 적이 없다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그저 모든 자료를 검토한 결과 자신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시도를 저지하려는 민주당의 노력을 저해하고 복잡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납득해 후보직을 내려놓은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은 20일 밤 가족회의를 하고 사퇴를 확정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일어났을 때 델라웨어 사저에는 질 여사와 다른 두 보좌관만이 함께하고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오후 1시 45분을 전후해 측근들에게 전화를 걸어 사퇴 의사를 밝히고 지금까지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 뒤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민주당 대선후보 사퇴 성명을 올렸다. 사퇴론을 촉발한 대선토론 실패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어니타 던 백악관 수석보좌관 등 이너서클로 간주되던 인사 중 일부는 직전까지도 그가 사퇴 의사를 굳힌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