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거리를 풍성하게 넣다가 여기저기 터질 것 같은 '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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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미술관 2024 창작산실 협력전시 '집(ZIP)'중심이 잘 안 잡힌 조각을 보는 것 같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의 2024년 창작산실 협력전시 '집(ZIP)' 얘기다. 1세대 조각가 김윤신부터 20대 작가 박소연까지 여성 조각가 16명을 망라한 기획전이다. 볼거리는 풍성하다.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부터 20대 작가 박소연까지
이번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예술진흥기금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시각예술 분야 기획자와 창작자를 연결하며 전시, 출판, 행사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올해 총지원예산은 27억4800만원이다.작가 16명의 신작을 포함한 작품 50여점을 폭넓게 선보인다. 전시 제목은 압축파일을 뜻하는 '집 파일'과 다양한 세대 조각가들을 '지퍼'처럼 연결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재료, 물성, 조형 등 조각의 기본 요소를 바탕으로 오늘날 조각을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겠다는 취지다.전시는 아르코미술관 1~2층에 걸쳐 진행된다. 김주현 작가의 신작 '확장된 뫼비우스의 띠-구형'(2024)이 가장 먼저 관객을 반긴다. 가운데로부터 프렉탈 형태로 번져나가는 동선에 LED 조명을 설치한 작품이다. 안과 밖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뫼비우스의 띠를 형상화했다.내부와 외부를 반전했다는 점에서 맞은 편에 전시된 정문경 작가의 'Yfoog'(2016)와 비교할 만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캐릭터 구피(Goofy) 인형의 겉과 속을 뒤집은 설치 작업이다. 바깥이 아닌 안쪽으로 굽은 김태연의 '말린 어깨'(2023)와도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다.이처럼 몇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감상하면 전시를 한층 깊이 음미할 수 있다. 독특한 재료의 질감이 돋보이는 작업들이 그중 한 갈래다. 비누를 빚어 만든 신미경의 도자기, 미용실에서 머리를 털 때 사용하는 폴리우레탄 스펀지를 활용한 서혜연의 설치작업 등이다.여성을 소재 삼은 작품들도 눈여겨볼 포인트다. 이립 작가의 조각은 세 개의 중심축으로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고 있는 여성을 형상화했다. 비걸(B-girl) 댄서의 몸동작이 모티프다. 한애규의 '천 년 동안 잠자던 바다여신은 왜 깨어났을까'(2024)도 빼놓을 수 없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연상케 하듯 두툼한 체형이 인상적인 수작이다.다소 산발적으로 구성된 전시장 각 층의 중심은 거장들이 잡아준다. 1층의 중심은 박윤자다. 1980년대 세라믹과 테라코타 작업부터 최근의 유리를 활용한 조각까지 작품의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다.2층의 균형을 잡아주는 건 김윤신이다. 40여년간 남미에서 활동하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거장의 울림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전시에도 선보인 대표작 '합이합일 분이분일' 연작과 최근 한국에서 제작한 회화 조각 '노래하는 나무'(2024)를 나란히 배치했다.전시장 일부 공간에선 작품 훼손이 염려되기도 했다. 관객과 작품을 가로지르는 차단막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지점이 드문드문 눈이 띄었다.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 정소영의 '응결'(2023)의 경우 관객이 작품의 존재를 모르고 밟을 뻔하는 아슬아슬한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통일된 주제가 드러나지 않는 점에서 다소 난삽하고 위태롭게 느껴질 수 있겠다. 전시 주제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 작가 한명 한명의 작품 세계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이들을 엮은 '지퍼'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인상마저 준다. 작가의 이야기를 진득하게 파고들기보단, 거시적인 관점에서 훑어보기 좋은 전시다. 9월 8일까지.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