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와 연출가가 공연할 때마다 관객 눈치보면서 내용을 바꾸는 뮤지컬
입력
수정
[arte] 최승연의 뮤지컬 인물 열전모든 공연은 근본적으로 공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단 하나의 사건’으로 수행된다. 배우들의 연기(의 합), 객석의 반응, 무대 위와 뒤를 흐르는 에너지 등이 그날 그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유일무이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래서 공연의 본질은 무엇보다 ‘현장성’에 있다. 관객은 객석에서, 배우와 스태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그날 그 공연의 모든 것을 함께 느끼고 함께 만든다.
연남장 캬바레 - 즉흥 뮤지컬
모두가 연출가가 되는 마법

좀 급진적으로 말해 <오첨뮤>는 공연의 본질에 순수하게 기대는 아이러니한 상업극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연은 완벽한 무(無)의 상태로 시작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 후 그대로 폐기된다. 때문에 <오첨뮤>는 공연의 분위기를 포함하여 그날 그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텍스트를 생산하는 차원에서 유일무이함을 지향한다. 원론적으로 재가공, 재사용이 불가능한 공연이라는 이야기다.
인물로 존재하는 연출가
사실 이런 스타일의 공연에서 ‘인물’을 말하는 건 쉽지 않다. <오첨뮤>는 인물과 주제보다 배우가 극적인 순간을 펼치는 퍼포먼스가 핵심이며, 퍼포먼스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떨어트리지 않도록 무대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핵심은 관객이다. 공연은 관객이 던지는 두 개의 제시어를 품으며 무의 상태에서 벗어나고 관객이 붙인 제목을 통해 그날 공연의 의미를 발산한다.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는 <오첨뮤> 전체에 흐르는 공연성을 유연하고 풍부하게 만든다. 특히 이번 <오첨뮤>는 ‘연남장 캬바레’라는 콘셉트와 만나 자유로운 형식을 더 증폭시킨 장소특정적(site-specific) 공연으로 제작되었다.

<오첨뮤> 연출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마치 창극의 도창처럼 극을 진행시키는 것이다. 흐름이 느슨해지고 배우들의 아이디어에 힘이 빠진 것처럼 보일 때 연출가는 서사의 공백을 채워 빠르게 진행시키거나 아예 서사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이때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흐름을 바꿔 공연의 긴장감을 높이고 흥미를 고조시키는 재치도 필요하다.
공연을 시작하고 마칠 때 관객, 배우 그리고 스태프 모두에게 신호를 주는 것도 연출가의 몫이다. 관객에게 제시어와 제목 선정 미션을 준다든지(필자가 공연을 본 날의 제시어는 좀비와 마늘, 제목은 ‘좀비지만 질문은 하고 싶어’였다), 특정 배우가 특정 역할을 연기하도록 관객의 반응을 유도한다든지, 공연의 의미를 정리함으로써 시작과 끝을 만드는 식이다.
모두가 연출가로 존재하기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오첨뮤>의 묘미는 바로 여기, 공연에 참여하는 구성원 전체가 연출가의 마인드를 장착하는 것에도 있다. 배우들은 극의 흐름을 이어 나갈 수 있는 고리를 ‘선물’이라고 표현하며 이것을 ‘예스 앤드(Yes and)’가 될 수 있도록 만든다. 다음 차례의 배우가 장면화할 수 있는 극적 모멘트를 주고받는 것이 핵심이라는 의미다. 배우들의 역할 수행은 따라서 자신의 장면이 다음 흐름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 현재 흐름을 재치 있게 포착하여 장면을 구성하는 것에 놓인다. ‘그다음’을 자신의 아이디어로 만들어내는 배우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연출가의 눈이다. 다음 장면을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출가와 논의하는 무대 아래 배우들을 보는 것은 공연의 백미다.
이는 배우 외에도 즉흥적으로 음악을 생성하던 연주자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참여한 관객의 재치가 결합된 것이었다. <오첨뮤>는 이렇게 모두가 연출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공연으로 계속 진화 중이다. 한국 뮤지컬의 다양화를 위해 계속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하기를.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