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비극이 미래가 되지 않도록 더 많이 이야기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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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배세연의 스페이스 오디세이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라는 정도의 정보만 가지고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았다. 햇살이 강렬한 여름날 늦은 오후, 사람이 많지 않은 영화관에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화가 현재로 전환된 순간,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의 참담한 기분이란….
나치 대학살로 희생당한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
'유럽에서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메모리얼'(2005)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많은 기억작업 중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것은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가진다. 그만큼 비극적이고, 그만큼 많은 형식이 존재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에 새로운 것을 보게 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홀로코스트를 또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목격할 수 있다는 사실이 한편 놀랍기도 했다. ▶▶▶ [관련 칼럼] 학살 가해자들의 일상으로 홀로코스트를 보고 듣다
홀로코스트를 기념하는 공간들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해왔다. 그들 중 처음 봤을 때 필자에게 가장 충격을 주었던 것은 ‘유럽에서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메모리얼 (Memorial to the Merdered Jews of Europe, 2005)’이다. 한 장소를 가득 채우고 있는 사각기둥들이 만들어내는 장면에서 섬뜩할 정도로 기이함을 느꼈고, 이것이 시각적인 충격으로 이어졌던 것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베를린 한복판에 위치한 이 메모리얼은 기념비도, 기념관도 아닌 광장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도로와 뚜렷한 경계가 없는 이 광장을 2711개의 콘크리트 기둥이 가득 채우고 있다. 이 기둥들은 모두 0.95X2.375M의 동일한 규격과 동일한 형태이며 높이에서만 차이를 가진다. 도로에 면하고 있는 기둥들은 벤치 높이기에 여기에 걸터앉아있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으며 광장의 중앙으로 진입할수록 기둥들은 높아져 최대 4미터의 높이를 가진다. 격자배열로 늘어서 있는 이 기둥들의 나열을 멀리서 보면 언뜻 물결이 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메모리얼과 주변을 구분하는 경계가 없고, 도로와 인접한 곳에는 지면과 크게 구분되지 않는 낮은 기둥들이 설치되어 있는 이유로 광장으로의 진입은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부담 없는 진입과는 반대로, 기둥 사이에 좁게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기둥들이 높아지며 도시경관이 차단되는 순간이 생긴다. 사방에 온통 높은 기둥들만이 존재하게 된 이때, 위치감각은 상실되고 심리적 압박감과 불안감 같은 감정이 솟아오른다. 일정한 간격을 가지고 격자로 늘어선 기둥들은 일견 질서정연해 보이지만 그 내부에는 사실 방향성을 인지할 수 없는 미로 같은 공간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설계가 궁극적으로 의도한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홀로코스트라는 참혹한 사건을 온전히 개인의 몸과 심리에 작용하는 경험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아무런 정보 없이, 즉 의미 없이 존재하는 콘크리트 기둥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개인의 생각과 해석이 중요함을 상징하며, 기둥 사이로 들어갈수록 느껴지는 심리적 불안과 위압감, 그리고 길을 잃은 느낌은 홀로코스트 당시 유태인들의 경험을 은유적으로 전달한다.
이 메모리얼에 대한 설명들 중 필자에게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설계자인 피터아이젠만의 웹사이트 프로젝트 페이지에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였다: "합리성과 질서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이 본래의 목적에 비해 과도해지면 되레 인간의 이성과 동떨어지게 되며, 그렇게 되면 모든 질서 체계에 내재된 혼란과 혼돈이 드러난다". 이 텍스트를 본 순간 메모리얼의 장대한 광경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기이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메모리얼이 홀로코스트에서 나아가 인간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형상으로 보였다. 이처럼 기이한 형상의 메모리얼은 베를린의 일상적 장소에서, 모두에게 개방된 채로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광장에 형성된 이러한 추상성을 보완하기 위해 광장의 지하에는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전시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지상이 가진 조형성을 연장하여 땅의 모양은 그대로 천장의 모양이 되고 콘크리트 기둥들의 모양과 배열 또한 이 천장에 그대로 반영하였다. 석비들의 이러한 흔적은 전시방식과 통합되어 지상과 지하가 조형적으로 일체감을 형성하며, 사람들의 경험을 유연하게 이어주고 있다.
과거의 비극을 상기시키는 이러한 메모리얼을 조사할 때마다 한 번씩 해보게 되는 생각은, ‘과연 이 매체들이 현재 얼마만큼의 효용성을 가지는가’이다. 우리는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현재의 장소에 돌을 쌓아 올린다. 그러면서 과거에 발생했던 사실을 알리고 잊지 말자는 다짐을 한다. 하지만 과거의 비극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폭력과 잔혹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가 과연 과거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과거를 전달하기 위한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더 많이 생각해내야 하고, 이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다. 오직 참담한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