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비극이 미래가 되지 않도록 더 많이 이야기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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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배세연의 스페이스 오디세이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라는 정도의 정보만 가지고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았다. 햇살이 강렬한 여름날 늦은 오후, 사람이 많지 않은 영화관에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화가 현재로 전환된 순간,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의 참담한 기분이란….
나치 대학살로 희생당한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
'유럽에서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메모리얼'(2005)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많은 기억작업 중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것은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가진다. 그만큼 비극적이고, 그만큼 많은 형식이 존재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에 새로운 것을 보게 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홀로코스트를 또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목격할 수 있다는 사실이 한편 놀랍기도 했다. ▶▶▶ [관련 칼럼] 학살 가해자들의 일상으로 홀로코스트를 보고 듣다
홀로코스트를 기념하는 공간들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해왔다. 그들 중 처음 봤을 때 필자에게 가장 충격을 주었던 것은 ‘유럽에서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메모리얼 (Memorial to the Merdered Jews of Europe, 2005)’이다. 한 장소를 가득 채우고 있는 사각기둥들이 만들어내는 장면에서 섬뜩할 정도로 기이함을 느꼈고, 이것이 시각적인 충격으로 이어졌던 것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설계가 궁극적으로 의도한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홀로코스트라는 참혹한 사건을 온전히 개인의 몸과 심리에 작용하는 경험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아무런 정보 없이, 즉 의미 없이 존재하는 콘크리트 기둥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개인의 생각과 해석이 중요함을 상징하며, 기둥 사이로 들어갈수록 느껴지는 심리적 불안과 위압감, 그리고 길을 잃은 느낌은 홀로코스트 당시 유태인들의 경험을 은유적으로 전달한다.
이 메모리얼에 대한 설명들 중 필자에게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설계자인 피터아이젠만의 웹사이트 프로젝트 페이지에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였다: "합리성과 질서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이 본래의 목적에 비해 과도해지면 되레 인간의 이성과 동떨어지게 되며, 그렇게 되면 모든 질서 체계에 내재된 혼란과 혼돈이 드러난다". 이 텍스트를 본 순간 메모리얼의 장대한 광경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기이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메모리얼이 홀로코스트에서 나아가 인간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형상으로 보였다.
과거의 비극을 상기시키는 이러한 메모리얼을 조사할 때마다 한 번씩 해보게 되는 생각은, ‘과연 이 매체들이 현재 얼마만큼의 효용성을 가지는가’이다. 우리는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현재의 장소에 돌을 쌓아 올린다. 그러면서 과거에 발생했던 사실을 알리고 잊지 말자는 다짐을 한다. 하지만 과거의 비극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폭력과 잔혹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가 과연 과거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과거를 전달하기 위한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더 많이 생각해내야 하고, 이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다. 오직 참담한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